태국 민주화운동 학생 지도자 파누사야 시티지와라타나쿨이 20일 방콕에서 열린 시위 도중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치켜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태국 민주화운동 학생 지도자 파누사야 시티지와라타나쿨이 20일 방콕에서 열린 시위 도중 저항의 상징인 ‘세 손가락’을 치켜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태국, 벨라루스 등 세계 곳곳에서 정부의 부당함을 호소하고 이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이를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어 눈길이 쏠린다.

젊은 여성들이 태국의 가장 강력한 기관인 군대와 군주제, 불교 승려를 지배하는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강력한 목소리를 내며, 새로운 정치 세력이 되고 있다고 2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NYT에 따르면 이번 태국 반정부 집회의 가장 초기이자 목소리가 큰 구성원 중 많은 수가 여학생들이다.

이 시위는 태국의 군주제 개혁을 수용하도록 촉구하기 위한 것이지만, 여성들은 또한 낙태, 생리용품에 대한 세금, 구시대적인 여성성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규칙 등 그간 국가 문제로 오르지 못하는 우려들을 공론화했다.

무엇보다도 태국의 가장 강력한 기관인 군대와 군주제, 그리고 불교 승려 등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가부장제에 대한 여성들의 반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들은 한 나라에서 더 큰 발언권을 요구하는 광범위한 목소리에 동참했다. 이번 시위대의 핵심 인사 중 한 명인 파누사야 시티지와라타나쿨은 “태국의 군주제와 군부가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며 “태국에서 남자들이 거의 모든 권력을 쥐고 있다고 말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방콕 탐마삿 대학의 학생인 주타팁 시리칸은 “기존의 민주화 운동에서는 남자들이 거의 차지했다”며 “지금까지 태국은 성에 따른 정치운동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문제에 대한 태국 정부의 입장은 일부 운동가들의 분노를 자극했다. 작년 선거 논란 끝에 쿠데타로 자리를 지킨 프라윳 찬오차 태국 총리는 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음에도 성평등론을 일축했다. 그는 2016년 한 연설에서 “모든 사람들을 정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고 남녀의 권리가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타이 사회는 악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프라윳 총리는 여성들은 가정에 대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집 밖에선 우리가 크다. 직장에선 우리(남성)에게 힘이 있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방콕 반정부 시위를 주도해 온 정치동맹인 자유민주여성 공동창립자 추마폰 탕크량은 “쿠데타 이후 남성 우월주의 사회가 커지고 있다”며 “이것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여자들은 뒷자리에 앉지 않는다. 우리는 최전방에 선다”고 덧붙였다.

어떤 면에서는 태국에서 여성들이 시위를 주도하는 게 새로운 상황은 아니다. 일부 분야에서 태국은 여성들에게 공평한 편이다. 여성들은 1932년부터 투표를 할 수 있었으며, 태국에서는 남성보다 더 많은 여성이 대학에 간다. 여성은 노동력의 45%를 차지하며 세계 평균 보다 높은 민간 기업의 약 40%는 여성이 이끌고 있다.

그러나 여성은 군대와 궁전 같은 기관에서 목소리가 부족하다. 여성 의원은 의회 의석의 14%에 불과, 정치적 대표성은 사실 거의 없는 셈이다. 태국 역사상 여성 전사들이 외국 침략자들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것으로 유명하지만 태국의 최고 사관학교는 여성을 받지 않는다. 약 10여년간 여성들에게 개방됐던 태국 왕립경찰사관학교는 작년 여성 지원자들에게 다시 문을 닫았다.

지난 19일 태국 방콕에서 한 민주화 시위 참가자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지난 19일 태국 방콕에서 한 민주화 시위 참가자가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출처: 뉴시스)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여성들의 이번 시위 참여는 또 다른 반향을 일으켰다. 그들은 국가나 왕실에 경의를 표하기 보다는 ‘헝거게임’ 책과 영화에서 나온 반항적인 세 손가락 경례로 학교 집회에 손을 들어주며 사립 여자 학교들 중 일부에 대한 저항을 가져왔다. 이 학교들은 머리 모양, 교복, 심지어 속옷에 대한 규칙을 내세우고 있었다.

올 여름 반정부 집회가 점점 커지자 여성들은 계속되는 임금격차를 비판하고 강간문화에 대해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또한 이들은 정부가 여성 위생용품을 화장품으로 분류해 더 많은 세금을 부과시키는 것을 비난했다. 자신의 신체에 대한 통제권을 주지 않는 낙태죄와 여성들을 얌전한 물건으로 치부하는 미인대회도 규탄했다.

지난 주말 밤샘 집회에서는 여성 연사들이 나와 태국 왕궁의 가부장적 전통을 겨냥했다. 후계법에는 왕관이 남자 후계자에게만 가야 한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엄선된 고문단인 추밀원의 구성원 모두 남성이다.

시위대 내에서도 여성 의제를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번 주말 집회에서는 대부분 남성들을 중심으로 결합되고 있었으며, 18명의 기조 연설자 중 여성은 3명뿐이었다. 한 남성 연설자는 “여성은 참견하는 성이라서 신이 참견을 줄여주기 위해 여성들을 약하게 만들었다”고 발언했다가 비난을 받자 이후 사과하기도 했다. 또한 시위대 가운데 페미니즘을 알리려 한 여성 운동가에 대해 남성이 조롱하거나 온라인에서 외모 등을 가지고 괴롭히는 상황도 발생했다.

[민스크=AP/뉴시스] 지난 1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려 학생들이
[민스크=AP/뉴시스] 지난 1일(현지시간)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열려 학생들이 "권력이 국민 목숨보다 중한가?"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인간 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태국에서만 여성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게 아니다. 벨라루스 민스크에서는 지난 주 수백명의 여성들이 알렉산더 루카센코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을 반대하는 행진을 하다가 체포됐다. 주말마다 수천명의 여성들이 대선 불복 시위에 참여했다. 루카센코 대통령의 라이벌이었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와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야당 지도자 마리야 콜레스니코바 등 이번 사태에 나선 주요 정치인들도 모두 여성이다.

미국에서는 종종 어머니의 이름으로, 또한 젊은 여성들이 경찰의 만행에 반대하는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주도했다.

‘여성 행진(우먼스 마치)’는 다음달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연방대법관의 공백을 채우려는 시도 등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의제에 대한 격렬한 반대 메시지를 보이기 위해 전국적인 행진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여성 행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이 더 이상 우리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10월 17일 강행군을 할 것”이라며 “이것이 우리가 준비해온 것이고, 이것이 2017년 1월 21일 수백만명의 페미니스트들이 행진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우먼스 마치는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시작됐으며 2017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100만명이 넘는 시위자들이 참가해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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