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발레단 <왕자호동>의 한 장면 (사진제공: 국립발레단)
오는 10월 발레 탄생지 이탈리아에서 공연 펼쳐

[천지일보=이지영 기자] 발레가 더 이상 ‘서양 춤’이라고 한정시켜서는 안 될 때가 왔다. 세계시장에서 더 설득력 있는 문화가 되기 위해 모든 예술장르의 힘을 기르는 이때 발레가 조금씩 그 결실을 맺고 있다.

국립발레단이 선보이는 발레 <왕자호동>이 오는 10월, 국립발레단 창단 49년 만에 발레 탄생지 이탈리아 산 카를로 극장에 서게 됐다.

산 카를로 극장 관계자는 작년 국립발레단의 <지젤> 공연의 세계적인 수준을 전해 듣고 한국적인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 <왕자호동>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발레 <왕자호동>은 1988년 국립발레단 초대 예술감독 故 임성남을 통해 첫 무대를 선보였고, 작년에 이어 올해 유럽진출을 위한 정리 작업을 거쳤다.

한국 발레 무용수들은 이미 세계에서 수석 무용수로 뛰어난 기량을 발휘하고 있다. 외국의 발레 대작들로 인재들을 길러냈다면,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한국적 발레를 세계에 선보일 때가 온 것이다.

구체적으로 발레 <왕자호동>은 어떤 모습일까. 우선 단순히 한국무용 춤사위를 변형한 것이 아니라 발레에 우리 이야기를 입혔다. 또한 이야기 전달이 분명하고 극적인 구성으로 대중적인 발레요소를 충분히 갖췄다.

<왕자호동>은 삼국사기 대무신왕 편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인류 공통 주제어인 사랑이야기지만 발레리나들의 여성적인 감성이 아닌 남성 무용수들의 선 굵은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백조의 호수에서 흰 드레스를 입은 가냘픈 백조 군무가 백미라고 한다면, 왕자호동은 28명의 발레리노들이 검무, 태권무를 비롯한 한국적 발레동작을 통해 고구려의 기운과 남성미를 뿜어낸다.

음악은 발레 음악형식의 기본적인 오케스트라를 편성했으며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국악기인 가야금·해금·거문고·생황 등을 독주악기로 덧씌웠다.

<왕자호동>의 무대는 한국적인 색채가 가득하다. 호동의 나라 고구려는 일원신도, 사신도 같이 신화적이고 추상적인 벽화 문양을 차용했으며, 선진 해양문화를 이뤘던 낙랑국은 물·달·연꽃을 상징으로 표현했다.

낙랑국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지키는 신비의 북 자명고는 사건의 핵심적인 장치다. 자명고를 찢어달라는 호동의 편지를 받은 낙랑이 편지를 몸에 감고 펼치는 춤은 기존 발레 레퍼토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사랑을 위해 자명고를 찢는 공주는 죽게 되고 뒤늦게 나타난 호동이 뒤따라 자결하는 장면은 한국적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릴만하다.

호동과 낙랑의 앙상블 춤은 공연의 백미다. 이때 발레리노 호동의 춤은 여성무용수를 돋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 아니다. 호동과 낙랑의 확신에 찬 사랑의 몸짓으로 두 역할의 균형 잡힌 앙상블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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