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9.7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9.7

1700년전 유리 세공 목걸이 3건 보물 지정
김해 대성동과 양동리 고분서 출토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서로 길이가 다른 3줄로 만들어진 목걸이가 멋스럽다. 이 줄에는 수정제 구슬 10점, 마노제(瑪瑙製) 구슬 77점이 치장돼 있다. 평균 지름이 6~7㎜ 정도로 아주 작은 형태로 다듬어졌고 각종 유리제 구슬 2386점 등 총 2473점이 이루어져 있다. 이를 통해 가야인들이 얼마나 시간과 정성을 쏟았는지 알 수 있다. 맑고 투명한 수정과 주황색 마노, 파란색 유리 등 다종다양한 재질과 색감을 조화롭게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이는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다. 3세기 말~4세기 초 금관가야(金官伽倻) 시기 중요한 고분 중 하나인 김해 대성동 76호 고분에서 2011년 대성동고분박물관이 발굴조사를 하다가 목곽묘에서 발견했다.

이와 관련해 7일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가야 시대를 대표하는 두 고분인 김해 대성동 및 양동리 고분에서 출토된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 등 목걸이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목걸이 3건은 ‘철의 왕국’으로만 주로 알려져 있는 가야가 다양한 유리 제품 가공 능력도 뛰어나 고유한 장신구 문화를 형성했음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출토 정황이 명확하고 보존상태가 좋으며 형태도 완전하여 역사‧학술‧예술 가치를 지닌 보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특히 ‘김해 대성동 76호분 출토 목걸이’는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조사를 통해 나온 터라 출토지와 유물의 내역이 분명하고, 여러 재료를 정교하게 가공해 색상과 질감을 조화롭게 배치한 가야인들의 수준 높은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금관가야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공예품으로 역사․예술 가치가 충분한 유물이다.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9.7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 목걸이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9.7

또 다른 목걸이인 ‘김해 양동리 270호분 출토 수정목걸이’는 1992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의 제2차 발굴 조사 중 토광목곽묘(土壙木槨墓)에서 발굴됐다. 양동리 고분 270호는 인접한 여러 고분과 겹쳐 있어 대부분 훼손된 상태였으나 고배(高杯, 높다리 그릇)를 비롯해 토기류나 철제 유물이 다수 출토되어 가야인들의 생활상을 알려 주는 중요한 고분으로 꼽힌다.

‘김해 양동리 제270호분 출토 목걸이’는 수정제 다면옥(多面玉) 20점과 주판옥 120점, 곡옥(曲玉) 6점 등 총 146점의 수정으로 구성되었다. 전체 약 142.6㎝의 길이에, 육각다면체형, 주판알형, 곡옥형(曲玉形) 등 여러 형태로 수정을 다듬어 연결했으며, 제작 시기는 고분의 형식과 부장품 등으로 보아 3세기로 추정된다.

김해 양동리322호분 출토 목걸이, 곡옥(파란색), 마노구슬(주황색) 세부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9.7
김해 양동리322호분 출토 목걸이, 곡옥(파란색), 마노구슬(주황색) 세부 (제공: 문화재청) ⓒ천지일보 2020.9.7

마지막으로 ‘김해 양동리 322호분 출토 목걸이’는 1994년 동의대학교박물관이 목곽묘에서 발굴한 유물이다. 함께 발굴된 유물 중 중국 한대(漢代) 청동 세발 솥(靑銅鼎, 청동정) 등을 통해 3세기 경 축조된 금관가야 시대 고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목걸이는 수정제 곡옥 147점, 대형 수정제 다면옥 2점, 마노 환옥 6점, 파란 유리 환옥 418점, 유리 곡옥 1점 등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보석 총 574점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경도 7의 단단한 수정(水晶)을 다면체로 가공하거나 많은 수량의 곡옥(曲玉) 형태로 섬세하게 다듬은 제작 방법은 가야인들의 기술 면모를 보여준다.

이번에 지정 예고된 가야 목걸이 3건은 각각 개별 유적에서 일괄로 발견됐다. 금관가야 고분에서 출토된 목걸이 중 많은 수량의 구슬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이며, 가야인들이 신분 위상과 지배 계층의 권위를 장신구를 통해 드러내었음을 실증적으로 말해 준다는 점에서 학술적으로도 중요하다. 또한 금‧은 제품을 주로 다룬 신라, 백제인들과 달리 수정이나 유리구슬을 선호한 가야인들의 생활상과 연관이 깊은 작품으로 화려함을 추구한 당시 사람들의 또 다른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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