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사건 파문… 소환되는 ‘푸틴 홍차’ 잔혹사
나발니 사건 파문… 소환되는 ‘푸틴 홍차’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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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현지시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알렉세이 나발니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남성이 “나발니는 독살 시도를 당했고, 우리는 누구를 비난해야하는지 알고 있다”며 나발니 사진을 들고 외치고 있다. 독살 의심 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진 러시아 반체제 인사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출처: 뉴시스)
22일(현지시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알렉세이 나발니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열린 가운데 한 남성이 “나발니는 독살 시도를 당했고, 우리는 누구를 비난해야하는지 알고 있다”며 나발니 사진을 들고 외치고 있다. 독살 의심 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진 러시아 반체제 인사 나발니는 독일 베를린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출처: 뉴시스)

나발니, 차 마신 후 혼수상태

독극물 중독 반정부 인사 많아

“푸틴, 총선서 의회 장악 목표”

[천지일보=이솜 기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 사건’ 파문이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나발니는 지난 20일 알 수 없는 원인으로 급격하게 건강 상태가 악화돼 의식을 잃었는데, 문제는 나발니가 공항 카페에서 ‘차’를 마신 후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의 대변인 키라 야르미슈는 인터뷰에서 카페에서 준 차에 푸틴 측이 독을 넣은 것이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푸틴 홍차’의 역사

차를 마신 후 건강 상태가 급속하게 악화하거나 독살 의심으로 사망한 푸틴 대통령의 정적들은 나발니가 처음은 아니다.

‘푸틴을 잘못 건드리면 방사능 홍차를 마시게 된다’는 섬뜩한 유머가 세계 네티즌 사이에서 공유될 정도로 수년간 많은 야당 인사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해왔다.

2018년 독살 의심으로 치료를 받은 푸시 라이엇의 멤버이자 반정부 인사인 표토르 베르질로프는 나발니가 이번에 겪은 초기 증상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처음에 눈이 보이지 않았으며, 곧 말하기와 걷기조차 어려워졌다. 이후 경련과 혼수상태에 빠졌다 깼다를 반복하며 중환자실에서 한 달간 치료를 받았다.

이번에 베르질로프는 모스크바 병원들이 나발니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을 것이라며 독일 인권단체인 ‘시네마 포 피스’를 나발니에게 주선했으며, 나발니는 23일 이 단체의 도움으로 독일 베를린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2017년에는 역시 반(反)푸틴 성향의 시민 운동가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도 독극물 중독 증세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퇴원한 후 외국으로 망명했다. 카라-무르자는 2015년에도 같은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다. 그는 야당인 ‘우파 동맹’ 지도자 넴초프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푸틴을 비판하는 시위를 조직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주도한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관련 부정·비리 보고서를 공동작성하기도 했다. 넴초프는 2015년 2월 크렘린궁 인근에서 괴한의 총에 맞아 숨졌다.

2006년 11월에는 전 러시아 정보요원으로 푸틴을 비판하다 영국으로 망명했던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가 호텔에서 방사성 독극물이 다량 섭취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사건 발생 10년 만인 2016년 영국 당국은 러시아 연방보안국 요원들이 그를 독살했고, 푸틴 대통령이 관여됐을 수 있다고 결론냈다. 당시 리트비넨코가 홍차를 마신 후 쓰러졌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른바 ‘홍차 살인’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2004년 체첸 사태를 파헤치던 언론인 안나 폴리트코프스카야도 비행기에서 차를 마신 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는 당시에는 목숨을 건졌지만, 2년 뒤 괴한의 총격으로 숨졌다.

2018년 3월에는 러시아 출신의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이 러시아가 군사용으로 개발한 신경작용제인 ‘노비촉’에 중독된 채 발견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야권 시위를 이끌며 반푸틴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나발니도 이번뿐 아니라 작년 7월 구금됐을 때 독성 화학물질에 노출됐었으며, 3년 전에는 푸틴의 지지자로부터 염료 공격을 받아 실명 위기에 처한 적도 있다.

베르질로프는 20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발니나 나를 타깃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러시아 정치 지도층으로부터 확실한 허가를 받은 보안기관 소속이라고 확신한다”며 “우리는 푸틴이 이 상황에서 분명히 허가를 냈을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나발니 존재 푸틴에게 위험”

크렘린궁은 이전과 같이 나발니와 관련한 모든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나발니가 처음 간 러시아 옴스크 병원 의사들은 그의 몸에서 독극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저혈당에 의한 대사장애로 쓰러졌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러나 나발니의 아내 율리아는 병원 측이 나발니를 독일로 이송하는데 반대하면서 시간을 벌었다며, 이는 나발니의 몸에서 화학물질이 빠지기를 기다렸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야르마슈는 이번 사건은 올해 지방선거와 내년 총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실패와 경기 침체로 러시아 국민들의 좌절감이 커지는 가운데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이 사상 최저 수준인 60% 안팎으로 곤두박질치면서 크렘린궁에게 있어 나발니의 존재가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정치 분석가인 아바스 갈리아모프는 “나발니가 친크렘린궁 후보를 대항해 선거에 나오는 것은 2021년 총선을 앞두고 특별한 도전이 될 것”이라며 푸틴 대통령은 현 임기가 만료되고 재선 출마를 선언할 수 있는 2024년을 위해 의회를 장악해야 하는데, 나발니는 이를 어렵게 만든다고 분석했다.

나발니 사건은 서구 나라에서도 파문을 일으켰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등 외국 지도자들은 나발니 사건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미국에서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이번 사건을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이 당선될 경우 “푸틴과 같은 독재자들과 맞서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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