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희망 1∼3학년 통일..학생 의견받아 첨삭하기도

(서울=연합뉴스) #1 (변경 전) "다소 다혈질적인 면이 있으나 남자다운 멋과 의리가 있음. 자신의 감정을 조금만 더 조절한다면…"
#2 (변경 후) "남자다운 멋과 의리가 있고 올곧은 성품이 돋보임"

서울시교육청이 감사로 밝혀낸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의 무단 수정 행태를 보면 이처럼 대학 입시 때 부정적으로 보일 대목을 빼고 긍정적인 내용을 써넣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적발된 학교 대다수가 입시 실적이 우수하다고 알려진 특수목적고와 자립형 사립고였다. 이에따라 과도한 대입 경쟁이 학생부로 학생을 다면적으로 평가하는 교사의 권위마저 침해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적발 학교들은 대다수 '학생부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고 부정적인 표현이 포함됐으니 수정해 달라'는 고3 수험생과 학부모의 부탁에 못 이겨 원칙을 어겼다.

3학년 교사가 1∼2학년 담임이 적은 과거 특기사항과 지도 의견을 입시에 유리한 방향으로 고쳐주거나, 공란으로 된 대목을 학부모ㆍ학생 의견을 토대로 채워주는 관행이 퍼진 것이다.

내용 면에서는 '교과 성취도가 저조하다'는 대목을 '우수하다'고 180도 바꾸고, 특정 직종의 꿈을 장기간 키웠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1학년 때 외교관, 2학년 때 교수, 3학년 때 교수'였던 장래희망을 1∼3학년 모두 '교수'로 통일하는 식으로 장래희망을 수정하는 등의 사례가 적지 않았다.

일부 교사들은 진로지도 상황이나 특기사항 등 교원이 꼭 써야 할 항목에 대해 학생들의 친필 '첨삭' 글을 버젓이 받아 이를 토대로 서류를 고쳐줬다.

학생부는 대입 입학사정관 전형에서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으나, 수험생 측이 '완벽한 학생부'를 만들어 달라며 학교에 부탁하는 경우가 늘면서 서류의 공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선생이 안 도와줘 아이가 대학에서 불합격했다는 원망을 견디기가 어렵다. 학생부를 고쳐달라는 말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에 무단 변경 관행이 발견된 23개교 중 20개교는 입시 경쟁에 특히 민감한 특목고와 자사고였다. 일반계고와 자율형 공립고는 각각 2곳과 1곳에 불과했고 특성화고는 아예 적발 실적이 없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감사 대상이던 한 교원은 '고3 담임으로서 무엇을 해줘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자신의 학생부를 전산으로 쉽게 볼 수 있다 보니 학생 측의 요청이 많은 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시교육청은 학교에서 이런 관행이 잘못이라는 인식이 아직 부족한 점 등을 고려해 부정 변경 횟수가 수십∼100건에 달하는 일부 학교 관계자에게만 감봉ㆍ견책 등 경징계를 내리기로 했다.

시교육청 측은 "이번 감사는 현장에 보내는 경고로,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적발되면 중징계(정직ㆍ해임 등)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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