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어느 한 해 거르는 해가 없다. 가지가지 형태의 자연 재앙이 사람들을 떼죽음으로 몰고 가고 지구를 할퀸다. 19만 5000년 전 인류의 원조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출현한 이후 자연은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젖과 꿀을 내주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고통을 안겨주는 불규칙한 운행을 되풀이해왔다. 여전히 불가항력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지금의 자연 재앙은 그래도 언제 어디서 일어나든 실시간으로 전 지구촌에 전파돼 공포와 아픔을 같이 나누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인류 공동의 노력을 촉발시킨다. 하지만 자연 재앙이 곧 천벌(天罰)이었을 무지한 시대의 자연 재앙은 어떻게 손 써볼 도리가 없어 땅 속이나 바다 밑바닥에서 햇빛을 못 본 채 영면하고 있는 것들이 수도 없을 것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도시 전체와 주민이 화산재에 묻혀 사라졌던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이며 환락의 도시였던 이탈리아 폼페이 시의 경우가 하마터면 그러할 뻔했다.

폼페이 시의 참상은 1400년이 지나도록 5-6m의 화산재에 묻힌 채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잊혀 있어야 했다. 그 참상을 제대로 널리 알릴 수단도 없었을 것이지만 당시 그 강성했던 로마제국도 어찌 원상을 복구하고 복원할 엄두를 내지 못 했던 것 같다. 지난 1549년에야 수로 작업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 쇳조각이 단서가 되어 발굴이 이루어짐으로서 폼페이 시는 비로소 햇빛을 다시 보게 됐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대서양에서인가, 카리브 연안 어딘가에 수몰돼 사라진 아틀란티스 문명처럼 전설로나 계속 남아 있어야 했을지 모른다.

인류의 삶의 터전인 지구는 결코 안전하지가 않다. 지구가 태어난 45억 5000년 전부터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 프랜시스S. 콜린스(Francis S. Collins)는 저서(이창신 옮김)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에서 이렇게 썼다. ‘지구는 처음 5억 년 동안 대단히 황폐한 곳이었다. 거대한 소행성과 운석이 엄청난 위력으로 지구를 끊임없이 공격했고 그 중 하나는 실제로 달을 지구에서 떨어뜨려 놓기도 했다.’ ‘2억 3000만 년 전부터는 공룡이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설에 따르면 약 6500만 년 전에 이 공룡의 지배가 갑작스럽게 파국적 종말을 맞았는데 이 시기는 지구가 현재 유카탄 반도라 불리는 곳 근처에 떨어진 거대한 소행성과 충돌한 시기다.’ 지금도 공룡의 멸종을 가져온 소행성이나 운석이 지구를 강타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공룡에게 안겨졌던 파국적 재앙은 이번에는 인류의 몫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해서 너무 겁먹을 필요는 없겠지만 지구와 인류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불안한가. 꼭 소행성이나 운석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그러하다. 지진과 쓰나미, 화산 폭발, 살인적인 홍수, 태풍, 폭설, 가뭄, 기근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재앙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지 않은가.

자연 재앙은 전쟁과 달리 적과 피아(彼我)가 있을 수 없다. 자연 재앙 앞에서는 인류 모두는 똑같은 피해자다. 유기적으로 돕고 대비하고 대응함으로써 피해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설사 재앙을 만난 나라가 한때의 전쟁에서 적이었거나 한때 원수였더라도 자연 재앙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은 지구에 사는 공동 운명체의 일원으로서 당연하다. 재앙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신속히 전파하고 알리며 이를 통해 그 실상을 보고 들으면서 공포와 아픔을 같이 나누고 가슴 아파하며 구조 활동에 각 국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까닭이 그것 아니겠는가. 능력이 닿는 대로 본능적이고 즉각적인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하는 것이지 인류애니 뭐니 하는 거창한 소리가 필요 없을 것이다. 특히 이웃 일본은 지진의 나라, 쓰나미(Tsnami)의 나라, 화산의 나라, 태풍의 나라다. 자연 재앙에 모범적으로 대비가 잘 된 나라지만 불가항력이다.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 무서웠던 베수비오 화산은 지금도 세계적인 미항 나폴리에서 불과 6km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불을 뿜고 있는 활화산이다. 폼페이와 나폴리를 포함해 언제 또 터질지 모를 화산 인근의 정주(定住) 인구가 300만이다. 화산은 한번 터진 곳에서 또 터지기 마련이므로 아무리 자연 재앙의 전조(前兆)를 알아내는 과학 기술이 발달했더라도 그들의 삶은 모험이다. 하긴 이렇게 언제 터질지 모를 각종 자연 재앙에 노출돼 모험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수가 세계 전체 인구의 10% 가량은 된다든가. 인간의 삶은 무전여행이거나 배낭여행, 쉽게 짐 싸들고 이동이 가능한 노영(露營)이 아니다. 일단 둥지를 틀고 터전을 닦으면 마음 졸이면서도 그 자리에 발이 묶인다. 무모하고 만용인 것은 틀림없지만 인간이 꼭 미련해서가 그 이유는 아니다. 베수비오는 17세기 어느 땐가와 1944년에 다시 대폭발을 일으켰지만 사람들은 잠시 피했다가 다시 돌아와 살고 있다. 화산재에 묻혔던 폼페이는 연 25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로마 시대의 검투사들이 진검 승부를 벌이던 원형극장, 목욕탕, 주피터 사원, 다양한 고대 문화유산들을 찾아 모여드는 관광 명소다. 조상들의 비극이 후대 사람들의 삶의 밑천이 돼주고 있는 셈이다. 자연 재앙이 잦은 곳이 무사할 때는 사람 살기가 좋거나 관광객을 유혹하는 휴양지나 절경 지역이기가 쉬운 것은 아이러니 같다.

얼마 전 에이야프알라요클(Eyjafjallajokull) 화산이 폭발해 유럽 전역의 항공기 수천 편을 결행케 했던 아이슬란드 사람들도 형편은 비슷하다. 그 곳엔 활화산이 150여개에 달한다. 그 활화산 때문에 생활이 도리어 윤택하다. 화산 자체가 관광자원이며 화산지대의 온천욕과 온수난방이 유명하다. 화산 증기에 의한 전기 생산, 화산 열에 의한 작물 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자연 재앙, 그것은 꼭 천벌만도 아니며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자연의 일탈 행위라고만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야말로 자연에 원래 주어진 자연의 정상적인 활동의 하나가 아닌가. 자연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자연에 의지해 사는 미약한 인간의 피할 수 없는 숙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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