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강 김덕수

오늘은 어느 스님이 광양 백운산 상백운암에서 정진하실 때의 이야기를 꺼내 보겠습니다. 때는 가을이 깊어 월동준비를 해야 하는데 그 해가 하필 흉년이 들었던가 봅니다. 탁발해온 양식을 모두 합쳐봐야 한 말이 조금 넘었다고 합니다.

텃밭에 심었던 무를 뽑아 보니 한 가마쯤 되어서 어떻게든 그것으로 겨울을 나기로 결심하고 정진에 들어갔답니다. 그러나 겨울을 반도 넘기기 전에 양식이 바닥나고 무로 끼니를 대신하는데 그것마저 또 바닥나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무를 다 먹어치우기 전에 공부를 반드시 성취하리라 결심하고 용맹정진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여수에 사는 한 현몽보살님이 밤에 꿈을 꾸었는데 불보살님이 현몽하시어 백운산 상백운암에서 스님이 죽어가고 있으니 어서 떡과 과일을 준비해 가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로 먹을 것을 장만해 눈길을 헤치고 상백운암에 이르러 보니 한 스님이 바위에 좌복을 깔고 앉아 계시는데 눈썹에는 서리가 하얗고 어깨에는 참새가 내려 앉아 누비를 쪼아 솜을 파먹고 있었다고요.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요즘은 어떻습니까? 옛날엔 한철 결제(結制, 안거를 시작함)를 나기 전에 난방을 위한 땔감 장만에서부터 양식을 탁발하는 모든 일들이 수행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곧 결제에 참여하는 수도자들 스스로가 수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장만하는 일은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오직 도를 구하기 위해 기꺼이 모든 고생과 구차함을 감내했던 것이죠. 그야말로 혹독한 일상생활 속의 단련을 기본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정신 차리고 철들기 위해 고생을 사서라도 한다’는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가 뜻을 세워 고통을 감수해 나간다면 아무리 고통스럽다해도 더 이상 고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당면하는 모든 일들에 정성스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도에 뜻을 두었다면 일상행위에선 지극히 겸손하고 상대를 극진하게 배려하며 자신이외의 모든 것을 스승으로 삼을 줄 아는 밝은 눈을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죠. 공부가 익어갈수록 몸가짐도 함께 조심스러워 지고 신중해 집니다. 공부가 향상될수록 얼굴은 밝아지며 몸은 더욱 부지런해지고 포용력은 무한히 확장되어 자연스레 주위를 감화시키는 위의(威儀)가 갖추어집니다. 이것이 기본에 충실한 수행자의 모습일겁니다.

요즘 선방엔 모든 것이 넘쳐납니다. 가장 정갈하고 담백한 음식중의 하나였던 사찰의 전통음식은 수행의 일상적 필요에서 나왔을 겁니다. 그런데 세속에서도 탁하다고 꺼리는 음식들까지 보시라는 명목으로 버젓이 들어옵니다. 피자·빵·콜라 같은 음식들은 거의 상용화 된지 오래입니다. 여름엔 아이스크림이 냉장고에 가득 쟁여져 있어 거의가 냉병에 걸립니다. 수도를 왜 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선방에서 공부하시는 스님들 중 상당수가 자동차를 스스로 운전하고 결제에 참여합니다. 핸드폰을 포행 중에도 켜두고 보살들 관리한다고 하는 얘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선방이 오랫동안 녹차에 팔려 모두들 냉병에 걸리고 나서는 중국의 저질 차들이 고가로 사찰로 들어와 판을 쳤습니다. 그러더니 지금은 커피가 선방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커피는 육식을 상용하는 사람들이 입안을 개운케 하기 위해 마시는 기호품으로 세속에서는 엄청난 육식에 노출되어 있으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절집에서 커피가 만연한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정진을 하면 기호식품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몸은 청수해 집니다. 그 어떤 기호식품도 예외는 없습니다. 끓인 물을 백비탕이라고 하는데 수도를 제대로 해서 몸이 맑아졌다면 세상에서 가장 담박한 물만이 수도자의 입맛에 맞을 겁니다. 기호품에 팔려 있다면 여전히 탐진치 삼독(불교에서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근본적인 세 가지의 번뇌)의 탁기가 몸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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