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엄마가 출근하면 아빠는 엄마를 위해 차린 밥상을 치웠다. 그리고 앞치마를 두르고는 설거지를 했다.
개수통 찌꺼기 처리까지 끝내면 아빠는 담배를 피워 문 채 신문을 보았다. 아주 느긋하게, 모퉁이 기사 하나까지 빠뜨리지 않고.

아빠의 ‘신문을 보면서 담배 피우기’ 습관은 아빠가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 들어앉게 된 뒤부터 생겨난 버릇이었다. 꽁초가 되면 바로 새 담배에 불을 붙이는 릴레이식 흡연이었다.

“머리 좋은 게 사회성 좋은 것만 못해. 너희 아빠가 남들처럼 직장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 성격과 체질 탓이야. 술도 한잔 못하시잖니.”

아빠에 대한 엄마의 시각은 대체로 이런 정도였다.
너무 일찍 직장에서 밀려난 아빠를 바라보는 엄마의 심정은 아주 복잡하고도 미묘했다. 아빠가 밥상을 차리는 모습을 대하는 엄마의 표정 또한 그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었다. 몹시 연민의 눈빛을 보이는가 하면, 비웃는 듯한 미소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몰래 한숨을 내쉬며 짐짓 고개를 돌려버리는 적도 많았다.

하지만 이즈음 들어서는 갈수록 아빠의 부엌일 담당을 엄마는 당연시 여기는 것 같았다.
신문읽기가 끝나면 아빠는 주로 화투 패를 떼며 시간을 보냈다. 패를 떼면서도 아빠는 곧잘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기보를 보며 바둑판 앞에 앉아 혼자서 돌을 놓는 때도 허다했다.

엄마의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아빠는 또 앞치마를 두르고 쌀을 씻었다. 그리고 그한테는 재떨이를 좀 비워달라고 했다. 아빠는 이상하게도 재떨이 청소만은 꼭 외아들인 그한테 맡겨버렸던 것이다.
담배꽁초로 수북한 재떨이를 비울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앞으로 너는 절대 여자한테 의지해서 살지 마. 알았지? 그리고 담배를 피우거나 앞치마를 둘러서도 안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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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의 아빠를 닮아 머리가 좋았다. 일류 대학을 졸업했으며, 당연히 대기업에 취직이 되었다. 실력이라면 입사 동기들한테 뒤질 게 없는 그였다. 맡은 일을 누구 못지않게 잘 처리해나갔으며 또 그 나름으로 열심히 했다.

하지만 업무가 사회생활의 전부는 아니었다. 오히려 서류 아래로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기류가 사람의 장래에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는 이런 기류변화에 민감하지 못했으며, 대인관계와 처세술에도 서툴렀다. 물론 술을 못하는 것 또한 아빠를 빼닮았었다. 체질상 음주를 못하는 것은 정말이지 업무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지만, 인맥관리상 그리고 유사시 경쟁업체나 엉뚱한 적으로부터 우군의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는 아주 불리한 여건으로 작용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는 차츰 동기들보다 뒤처지게 되었다. 자존심이 남달랐던 그는 이게 또 참기 힘든 노릇이었다. 특별히 상사의 눈 밖에 날 정도로 실수를 한 적도 없건만 갈수록 윗사람의 신임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져 혼자 겉돌았으며, 회사 일도 지루하게만 느껴졌다.
세계적인 불황의 여파로 구조조정 바람이 불어닥치자 그는 결국 정리해고 대상 1호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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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내가 출근하자 식탁을 치우고는 에이프런을 둘렀다.
설거지를 끝내자 신문을 대충 훑은 그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리고 게임 사이트에 들어가 고스톱이나 포커를 쳤다. 줄곧 담배를 입에 문 채.

마작이나 오락에 몰두하기도 했는데, 게임은 거의 종일 이어졌다.
아내의 귀가 시간이 가까워지면 컴퓨터에서 물러난 그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한번 켠 다음 싱크대 앞으로 가 저녁 준비를 했다. 아니, 그 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불러 재떨이를 좀 비워달라고 했다.

컴퓨터 앞의 재떨이에는 꽁초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러면 그의 아들은 그 끔찍한 재떨이에 진저리를 치면서 속으로 이같이 다짐했다. 나는 절대 에이프런을 두르지도, 담배를 피우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아예 독신으로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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