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유신체제 2년째인 1975년 4월 9일, 젊은이 8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8명의 죽음은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문익환 목사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됐으며, 故 법정스님은 “붓을 꺾고 은거의 길을 걸었다”고 회고할 정도였다. 아울러 국제법학자협회는 1975년 4월 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지정하기도 했다.

요즘 세대들에게 낯선 인혁당 사건은 바야흐로 36년 전 이야기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학생시위를 주동해 온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의 배후가 인민혁명당재건위(인혁당)를 지목했다. 김원일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인혁당은 유신정권이 죄 없는 젊은이들을 고문해 만들어낸 허깨비다.

김 작가는 이들의 넋을 조금이라도 기리기 위해 사형당한 인혁당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오랜 바람이기도 했다.

<푸른 혼>은 사형당한 인혁당 관련자 8명 가운데 6명의 이야기다. 이름을 조금씩 바꿨을 뿐 사실(史實) 그대로 펼쳤다. 정확히 말하면 책은 정치적 내용보다 당시 정치적 희생양이 된 청춘들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단순히 정치적 희생양으로 죽음을 맞이해야만 했던 젊은이들이 가여워서가 아니다. 그 속에서 우정과 열정으로 가득한 진짜 ‘청춘’이 이슬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푸른 혼>은 ‘여의남의 평전’이라고도 불리는데 작가가 여의남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갓 서른인 여의남은 훤칠한 키에 풍채가 당당했으나 모진 고문 끝에 만신창이가 됐다. 김 작가는 이를 아쉽기라도 한 듯 글의 말미에 ‘대처승의 아들이었던 여의남이 육신을 철저하게 무(無)로 만들어 처형의 순간 해탈로 가려는 준비를 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억지 죽음은 뜻을 같이한 두 동무의 우정과 뜻을 거스르지 못했다.

“모진 고문을 당할 때마다 니 생각 참 많이 했대이. 무슨 일에 닥치든동 침착하던 니 얼굴이 떠오르모 쪼매는 덜 아푸더라.”

“감빵에서 지난날을 생각해보이 누구보다도.. 니한테 억시기 미안한 기라.”

친구 사이였다가 같은 날 사형당한 이수병과 김용원의 대화다. 이 둘은 고문을 받는 순간부터 서로 자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상대방이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미안해한다. 아니 측은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마 괜찮다. 우리는 죽어서도 만낼 동무 아이가”라고 서로를 위로한다.

당시 민주화의 꽃을 피우기 위한 움직임이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젊은이들은 유신체제에 적극 반대했다. 그 대가는 ‘간첩’이라는 오명과 죽음이었다. 하지만 청년들은 기죽지 않고 꼿꼿이 신념을 꺾지 않았다. 그 결과 민주화의 바람이 지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인들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들의 피땀 어린 투쟁과 맞바꾼 것이다.

책은 독자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이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을 잊지 말자. 민주주의를 이룩하려 했던 이들에 대한 최소의 도리다”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누릴 수 있는 똑똑한 국민이 되라”라고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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