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떠나볼까] “슬프지만 장엄했다”… 겨울의 남원 ‘만인의총’
[잠시 떠나볼까] “슬프지만 장엄했다”… 겨울의 남원 ‘만인의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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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의총. [천지일보=김도은 기자] 만인의총은 사적 제272호로,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2.14

[천지일보=김도은 기자] 만인의총의 모습. 만인의총은 사적 제272호로, 전라북도 남원시 향교동에 위치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2.14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 속 1만여명 순절

물구덩이에 시신 합장… 해방 이후 이전

기념관, 전쟁 당시 관련 유물 70여점 전시

전란 속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사기장들

노래 ‘오늘이 오늘이소서’로 망향의 한 달래

[천지일보=김성완 기자] “피는 흘러 강을 이루고, 시신은 쌓여 산을 만들었네.”

선조 30년(1597년). 왜군이 다시 남원으로 쳐들어왔다.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싸움터로 나선 이름 없는 민초들,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들이 묻힌 무덤가에서 바라본 남원 시내는 너무나 평온했다. 그 시절 치열했던 함성은 끝없이 이어지는 산새에 파묻혀 버린 듯 했다. 지우고 싶어도 지워지지 않는 서글픈 남원성 패전의 흔적이 현실 속으로 성큼 다가섰다.

겨울을 품고 있는 남원을 찾았다. 기자 일행이 남원을 찾은 2월, 겨울 끝자락 추위는 매서웠지만 하늘은 높고 맑았다. 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했을 뿐이다.

전라북도의 남동부에 있는 남원은 그리 크지 않은 소도시다. 여기저기 한달음에 갈수 있어서인지, 남원의 모습은 어쩐지 정감이 간다.

남원은 본래 광한루, 춘향각, 오작교 등이 유명하지만 기자 일행은 살짝 비켜 역사의 한 부분을 온전히 담아내보겠다는 거창한 표정을 짓고 만인의총(萬人義塚)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평일 오후여서인지 도로에는 차가 많지 않았다. 간간이 지나가는 차량 너머로 보이는 낯선 도시가 흥미롭다. 운전자가 가는대로 창밖의 경치를 즐기다보니 어느 샌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만인의총에서 바라본 남원의 모습. ⓒ천지일보 2020.2.14
만인의총에서 바라본 남원의 모습. ⓒ천지일보 2020.2.14

-역사 속 정유재란을 아시나요

만인의총 조성 배경은 정유재란과 맞닿아 있다. 정유재란은 임진왜란 막바지에 조선과 왜군의 강화 교섭이 결렬되자 선조 30년 정유년에 일어난 왜란이다. 호남 점령의 실패가 임진왜란의 패인이라 판단한 왜군은 우선 전라도 지역을 탈취하기 위해 11만 대군을 이끌고 우군은 전주성을, 좌군(5만 6000여명)은 남원성을 공격했다.

왜군은 남원성을 겹겹이 에워쌌고, 4일간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수적 우세에 밀려 패했고 남원 시민 6000여명을 포함한 1만여명이 모두 순절했다. 안내 책자의 설명이다.

당시 왜군의 군의관이었던 경념의 글에 따르면 남원성 내 사람이 모두 죽어 생포할 사람이 없으며 길바닥에 시체가 모래알처럼 쌓여 있었다고 한다. 남원 전체가 불타고 무너졌다고 하니 그날의 비극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역사의 한 부분을 글로 써내려가는 것에 불과하건만 마음 한켠이 무겁다.

‘만인의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석비(石碑)를 마주했다. 석비를 지나 정문으로 들어서니 잘 정돈된 너른 터가 나왔다. 오른편 안내판은 정유재란이 발발하게 된 배경을 만화로 쉽게 담아내고 있다. 잔디 위를 걷다, 길을 따라 걷다 왼편으로 보이는 ‘만인의사 순의탑’ 앞에 섰다. 그리고 묵념을 한다. 볼 옆으로 스치는 바람이 그날의 일을 뜨겁게 속삭이는 듯하다.

이 탑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싸우다가 희생된 민관군의 고귀한 정신을 3개의 수직기둥과 상단부의 불꽃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지난 2000년 12월 건립됐다. 탑 양쪽에는 전투장면이 부조돼 있다.

[천지일보=김도은 기자] 만인의총의 첫 관문인 홍살문. 門자 모양의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나무문으로, 화살이나 삼지창을 닮았다. ⓒ천지일보 2020.2.14
[천지일보=김도은 기자] 만인의총의 첫 관문인 홍살문. 門자 모양의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나무문으로, 화살이나 삼지창을 닮았다. ⓒ천지일보 2020.2.14

-1만인의 의로운 무덤 ‘만인의총’

공터 중앙 앞쪽 홍살문 쪽으로 걸었다. 門자 모양의 홍살문은 붉은 칠을 한 나무문으로, 화살이나 삼지창을 닮았다. 홍살문 오른편에는 팔충신 사적비와 기념관이 있지만, 우선 만인의총을 찾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보통 관청, 묘 따위의 앞에 세운 문을 세 개의 문이 있다고 하여 삼문이라고 하는데 만인의총 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홍살문과 외삼문 충의문, 내삼문 성인문, 그리고 성인문 안에 있는 충렬사를 거쳐야 만인의총에 이를 수 있다. 각 문을 통과할 때도 유교례에 따른 규칙이 있다. 규례를 지키고 있는 내 모습이 어색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멋쩍었다. 동쪽 문으로 들어갔다가 서쪽 문으로 나와야 하는데 동입서출의 원리로 동쪽은 시작, 서쪽은 끝을 뜻한다고 한다.

각각의 문을 지나면 마주치는 층층이 계단도 눈길을 끈다. 3층형 계단식 구조로 배치됐다. 기자 일행의 가벼운 마음을 채근한 것일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잠시 한 숨 돌리려 뒤돌아보니 풍경은 또 어찌나 좋은지, 대지는 또 얼마나 넓은지, 그날도 같은 풍경이었을텐데 눈물겹다.

충렬사에서 향을 태우고 뒤편 계단으로 올라서니 드디어 만인의총에 들어섰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덤은 아무런 말이 없다. 묘역을 두르고 있는 잔디위에 손을 얹고 문득 상념에 잠겼다가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전쟁(정유재란)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까. 가족, 친지, 이웃 주민 등 낯익은 이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그들의 떨림이 전해지는 듯 했다.

만인의총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시 옛 남원역 주변 물구덩이에 켜켜이 시신을 집어넣고, 그 위에 그렇게 초라한 작은 봉분 하나 만들어 표시를 해 두었다고 한다. 그마저도 일제 강점기에는 만인을 합장했던 물구덩이에 주택가가 들어섰다. 그 옆에 철도와 역이 생기고 오고가는 기관차의 석탄 쓰레기가 쌓이는 등 방치됐다. 해방이 되고 1964년이 돼서야 남원의 뜻있는 인사들이 그 자리의 흙을 퍼다가 왕봉산 기슭인 지금의 자리에 옮겼다. 1973년에는 의총 앞 사당에 ‘만인’의 위패가 모셔졌으니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376년 만의 일이었다. 그 때까지 이들을 위한 사당도, 위패도, 제사도 일체 없었다.

만인의총 기념관. ⓒ천지일보 2020.2.14
만인의총 기념관. ⓒ천지일보 2020.2.14

-만인의총 기념관-망향의 한을 담은 노래탑

내려다보이는 잔디의 푸르름이 더 시렵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내려가니 올라갈 때 보이지 않던 소나무가 눈에 쏙 들어온다. ‘만인의 넋을 지키려고 저렇게 사시사철 쌩쌩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났다.

홍살문 왼쪽 만인의총 기념관 쪽으로 향했다. 기념관에는 남원성 전투의 역사와 만인의총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자료가 비치됐다. 남원성 전투를 그린 전황기록화 4폭을 비롯해 당시의 유품, 그리고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왜군이 자필로 그린 남원성 침공 작전도, 임진왜란상황도, 순절한 충신들의 교지 4점과 관련된 책자, 당시의 화포 등 여러 유물 70여점이 소박하게 전시돼 있다.

기념관을 나와 보니 저기쯤 뾰족한 탑이 하나 보인다. 가까이서 보니 ‘오늘이 오늘이소서’ 라고 적혀 있다. 노래를 기리는 탑을 세웠을 정도라니 ‘과연 어떤 사연이 있을까’ 살펴 볼만하다.

이 노래는 고려 말에서 조선조 중엽까지 평이한 일상 속에서도 ‘오늘’의 기쁨을 누렸던 조상들의 넉넉한 마음과 여유를 잘 표현해 널리 애창됐으나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을 겪으면서 아는 이도, 노래도 사라져갔다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임란 당시 남원에 피신해 와 있던 장악원 악사 양덕수가 이를 채보해 1610년 악보집 양금신보(梁琴新譜)를 펴냈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진 계기가 됐다.

이 노래가 무엇보다도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양란을 거치면서 남원에서 납치돼 일본으로 끌려간 수많은 사기장과 도공들이 망향의 한을 달래며 되뇌었던 이 노래가 그 후손들에게까지 이어져 40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서였다.

오나리 오나리쇼셔 / 마일에 오나리쇼셔 / 졈그디도 새디도 마라시고 / 새라난(나난) / 마양 당직에 오나리쇼셔

(오늘이 오늘이소서 / 매일이 오늘이소서 / 저물지도 새지도 마시고 / 새려면 / 늘 언제나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말았으면 하는 오늘, 날이 샌다 해도 다시 오늘 같은 날이 되었으면 하는 오늘, 끝없이 계속되었으면 하는 오늘은 어떤 것일까. 그들도 그런 삶을 갈구했을 게다.

과거를 오롯이 품고 있는 이 공간은 슬펐지만 장엄했다. 이름 없는 99%의 삶과 너무나 닮아 있어서 아팠지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아도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그들이었다.

어찌됐든 소박하고 단정했던 만인의총의 짙은 여운은 오래오래 머물러 있을 것 같다. 어렵고 힘들었던 백성의 삶이 혼재돼 있는, 또한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현장에서 더 나은 삶에 대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 ⓒ천지일보 2020.2.14
‘오늘이 오늘이소서’ 노래탑. ⓒ천지일보 202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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