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명소] 단재 신채호 생가, 그 얼을 더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지역명소] 단재 신채호 생가, 그 얼을 더듬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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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 중구 어남동 233 도리미마을에 있는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대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새해, 기념교육관 건립 추진
선구적 연구, 민족사관 정립
언론인으로서 애국계몽운동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 대전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 단재(丹齋) 신채호 선생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대전 어남동에 있는 그의 생가를 찾아 그 얼을 더듬어봤다. 단재의 육체는 우리 곁에 없지만 그의 정신은 그 삶이 처절했던 만큼 아직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 강하게 남아 꿈틀거리고 있다. 손톱이 뽑히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문을 받으면서도 일제의 유혹에 한 순간도 굽히지 않았던 단재, 그는 아내와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조차 오직 조국의 독립을 이루는 것이었을까. 그의 개인적인 삶은 안타깝게도 너무 불행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대전 중구 어남동 233 도리미마을에서 태어나 8살까지 살았다. 지난 3월엔 그 생가 유적지에 이낙연 국무총리도 방문한 바 있다. 신채호는 아버지를 여의자 할아버지를 따라 충북 청원군 고두미 마을로 옮겨 할아버지 슬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9세에 자치통감을 마치고, 13세 무렵 사서삼경을 모두 독파할 정도로 영특했다. 그는 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하여 26세에 박사가 되었다. 이후 그는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민족의식의 앙양과 독립정신의 고취에 힘썼으며, 1907년 28세가 되자 신민회에 참여하여 국채보상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 중구 어남동 233 도리미마을에 있는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독립운동가들의 국내활동이 위험하고 어려워지자 그는 조국을 떠나 중국 만주 땅에서 활동하다 1928년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1936년 독방에 수감됐다. 징역 10년형을 받고 중사상범으로 옥중생활 중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추위였다. 원래 어려서부터 병약한 그에게 추운 북방의 뤼순의 날씨와 감옥의 시멘트 바닥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웠다. 그는 끼니를 굶고 있는 부인에게 편지를 보내 “조선옷에 솜을 많이 놓아 두툼하게 하여 보내 달라”고까지 했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되어 자신이 옥중에서 죽게 될 것을 예감하면서 출옥을 1년 8개월 앞둔 그는 뇌일혈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서울에 있던 부인 박자혜와 16세 아들 수범이 ‘신채호 뇌일혈, 의식불명, 생명위독’이라는 전보를 받고 장례절차를 준비하여 다롄으로 향했다. 가족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의식불명인 채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일제 간수들은 면회시간이 지나자 부인과 아들은 ‘간수에게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임종을 지켜보게 해 달라’고 애원했지만 간수들은 가족을 쫓아냈다. 신채호는 1936년 2월 21일 오후 4시 20분 얼어붙은 시멘트 바닥 위에서 아무도 지켜보지 못한 채 향년 57세로 홀로 생애를 마쳤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홍보관에 있는 그의 사진. ⓒ천지일보 2020.1.1

대전의 아들, 대한민국의 숨은 애국독립 운동가, 단재(丹齋) 신채호! 그가 남긴 교훈은 무엇인가. “역사를 바로 알려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의 미래는 없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다시 일어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 외친 신채호는 ‘조선혁명선언서’로 1923년 의열단의 독립이념과 방략을 이론화하여 천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민족사학의 지평을 연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으로 활동하여 우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선생은 언론활동을 통한 애국계몽운동과 선구적 역사연구로 민족사관을 정립하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단재는 ‘조선혁명선언서’를 통해 일제를 조선의 국권을 파탈한 강도로 규정하며 이를 타도하기 위한 혁명을 정당화하고 독립을 위한 민중의 직접혁명을 주장했다. 이를 위해 그는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주식회사 등 5가지 파괴 대상과 고유 조선과 민중문화 등 5가지 건설 목표를 제시했다. 생전에 그토록 바라던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뤼순감옥에 생을 마감하는 신채호는 혹독한 고문을 당하던 때와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을 아까워하지 않고 절규했다. “대한독립만세~!”

“내 비록 지금 떠나지만 내 눈은 이 자리에, 꽃피는 날 우리 다시 만나자!”

나라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고 고국 땅을 떠나 중국, 만주로 떠나는 동지들은 이렇게 노래했다. 신채호와 이들 독립투사들은 가슴에 조국을 묻고 간절한 심정으로 평화를 찾은 대한민국 땅에서 다시 만날 것을 바랐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내 전시관. ⓒ천지일보 2020.1.1

일제의 참혹한 고문과 총칼 앞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저 하늘에서 지금도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노래하고 있을 신채호와 그의 동지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천상의 소리로 우리 영혼을 적시며 신채호와 함께 한 이들의 정신, 그 민족을 일깨우는 역사의식과 희생을 배우고 마음에 새기고도 남는다.

“순국선열이 그토록 바라던 나라에 값없이 사는 우리는 평화의 나라를 바랐던 그들을 위해 함께 기억하고, 같이 염원한다. 조국을 위해 순국한 수많은 영혼들, 그리고 위대한 단재(丹齋) 신채호를 기리며…”

최근 대전시는 탄신 139주년을 맞아 그의 얼굴, 어록에 대한 면밀한 고증을 거쳐 서대전공원에 동상을 건립하고 어남동 도리미마을 생가에서 기념식을 진행했다.

◆면밀한 고증 거쳐 서대전광장에 동상 건립

대전시는 대전출신 독립운동가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 선생의 동상을 서대전광장에 세웠다. 대전시는 지난 8일 오후 2시 서대전광장에서 단재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에는 허태정 대전시장과 김종천 대전시의장, 설동호 대전시교육감, 유인태 단재기념사업회 대표, 단재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를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과 구청장 시·구의원 등이 참석했다. 동상은 좌대를 포함한 4.95m 높이의 입상 형태로, 우직하게 독립운동만을 위해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대전시는 동상 건립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단재 기념사업회 이사를 비롯해 근현대사와 회화, 조각 분야 전문가, 시민단체 대표 등 12명으로 꾸려진 자문위원회를 꾸려 건립위치와 조형, 얼굴, 어록에 대한 면밀한 고증을 거쳤다.

대전시는 20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단재를 알리기 위한 다큐멘터리 제작과 학술세미나 개최, 특별전시전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추진했고, 2020년 단재 신채호 기념교육관 건립 사업도 본격 추진할 계획이다. 정윤기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내년 예산 가운데 지난 10일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2020년 정부예산에 신규사업으로 대전의 역사성 정립과 관광 콘텐츠 및 기반 육성을 위한 사업 중 ‘단채 신채호 기념교육관 건립’ 사업비 2억 2000만원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전시,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제막식. ⓒ천지일보 2020.1.1
대전시가 2019년 12월 8일 서대전광장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제공: 대전시) ⓒ천지일보 2020.1.1

◆어남동 생가지서 ‘탄신 139주년 기념식’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9주년을 맞아 대전중구문화원은 2019년 12월 8일 오전 10시 30분 중구 어남동 도리미마을 단재선생 생가지에서 기념식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다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행사로 진행됐다. 지난 12년 동안 ‘헌화식’으로 진행돼왔으나 올해부터는 행사 규모를 확대하고 격상시켜 ‘기념식’으로 행사명을 변경시켰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는 식전행사로 산성동풍물단의 풍물공연을 시작으로 박헌오 한국시조협회장이 쓴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9주년에 드리는 헌시’란 제목의 시를 노금선 시인과 박헌오 시조시인의 목소리에 담아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단재 선생의 동상 앞에서 헌화와 묵념을 마치고 초가지붕의 옛 모습이 보존된 생가를 둘러보았다.

노덕일 원장은 “단재 신채호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기념식을 거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추모·기념행사가 여기저기서 함성처럼 울려 퍼지고 단재사상이 우리 가슴 속에 속속히 틀어박혀 우리도 이 시대에 맞는 나라사랑을 실천하겠다”고 말했다. 2019년 13회째 맞는 이날 행사에는 허태정 대전시장, 유인태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상임대표를 비롯해 박용갑 대전 중구청장, 박정현 대덕구청장, 황운하 대전지방경찰청장, 길공섭 대전시문화원연합회장, 이환수 대전국악협회장, 백은기 국제휴먼클럽 총재, 이덕남 여사(단재 자부), 신정윤 단재 선생 증손, 고령신씨 종친, 옛터를 생각하고 돌아보는 모임 회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한편 대한민국 정부는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 1962년 대한민국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그의 어남동 생가는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이다. 1992년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ㄱ자형의 안채와 헛간을 복원하고, 1996년에 생가지 앞에 동상을 건립했다.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천지일보 대전=김지현 기자] 대전 중구 어남동 233 도리미마을에 있는 단재 신채호의 생가. ⓒ천지일보 20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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