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2000년 1월, 새 천년이 시작되자마자 한국빙상에 획기적인 일이 벌어졌다. 빙상인들의 오랜 숙원인 400m 실내 아이스링크가 태릉선수촌내에 마련됐던 것이었다. 그 이전까지는 옥외빙상장에서 겨울에만 훈련이 가능했던 빙상 국가대표선수들은 국내에서 유일하고 세계에서 8번째로 건립된 400m 실내 아이스링크에서 계절에 관계없이 훈련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들어 60×30m의 아이스링크에서 벌어지는 쇼트트랙에서만 세계적인 강국으로 군림했던 한국빙상은 400m 실내 아이스링크를 발판으로 삼아 취약 종목인 스피드 스케이팅에서의 도약을 모색했다.

화려한 결실이 맺어진 것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이었다. 꼭 10년만의 일이었다. 이규혁이 세계 스프린트 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수준에 근접해가던 한국빙상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모태범과 이상화가 남녀 500m서 동계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동반 우승을 이뤄냈고 이승훈은 아시아 최초로 최장거리인 1만m에서 금메달, 5000m에서 은메달을 각각 따냈다. 여기에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김연아도 피겨스케이팅에서 한국피겨사상 처음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어 기쁨을 더해 주었다.

지난 6일 카자흐스탄에서 끝난 2011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빙상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이어 위세를 이어 나갔다. 이승훈이 3관왕에 올랐고 노선영이 스피드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스피드 팀 추월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각각 추가했다.

한국은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 5개를 수확한 것에 힘입어 총 금메달 13개로 일본과 금메달 수에서 동수를 기록했으나 은메달에서 뒤져 종합 3위를 차지했다. 주최국 카자흐스탄은 홈코트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 금메달 31개로 종합 1위를 했으며 중국은 금 11개로 4위로 밀려났다.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이 따낸 총 금메달 13개중 8개를 소속 선수들이 획득한 한국체육대학교(한체대)도 400m 태릉실내아이스링크가 건립된 지 1년 뒤인 2001년 쇼트트랙선수를 위한 전용 실내빙상경기장을 학교 내에 세웠다. 한체대가 안현수 등 많은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은 전용 실내빙상장의 시설이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이승훈은 한체대 실내빙상장에서 코너링 훈련을 집중 연마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쇼트트랙 선수였던 이승훈은 스피드훈련과 함께 탁월한 코너링 실력을 자신만의 장기로 삼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다.

동계 아시안게임 선수단장을 맡았던 김종욱 한체대 총장은 “밴쿠버 동계올림픽과 이번 동계아시안 게임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선수들이 실내 전용 경기장에서 훈련에 매진한 때문이었다”며 “하지만 전반적인 국내 빙상시설이나 여건이 열악해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무대에서 지속적으로 성적을 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대한빙상연맹에 등록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는 500여 명 남짓하고 국제규격의 400m 실내 스케이트장은 10년 전에 세워진 태릉실내스케이트장이 유일하다. 그마나 전통적인 강세 종목인 쇼트트랙 스케이트장은 30여 곳 정도이다.

북한이 이번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전체 종목에서 단 한 개의 금메달도 따내지 못한 것을 보면서 동계 종목에서 투자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북한은 1964년 인스부르크 동계올림픽 여자 3000m에서 한필화가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은메달을 획득하는 등 1970년대까지 한국보다 앞서 나갔지만 이후 국가적인 지원이 여의치 않아 아시아에서 주변국으로 완전히 밀려나고 말았다.

한국 빙상이 성공적인 지난 10년을 준비했듯이 앞으로 새로운 10년을 성공적으로 준비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여건을 전반적으로 향상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육상과 함께 동계스포츠 기본 종목인 빙상에서 앞서 나가려면 지속적인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투자가 이어져야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북한의 실패사례는 교훈으로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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