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남자가 여자에게 점수를 잃는 확실한 방법 중의 하나는 여자의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는데도 멘트를 날리지 않는 일이란다. 또 어느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여자한테 수염이 있었다면 머리 모양 못지않게 그 패션과 스타일 역시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였을 거라고.

둘 다 여자의 머리 가꾸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라 하겠다. 그래서 내가 미용학원을 다닐 때 그 학원의 원장은 곧잘 ‘깊은 밤 깊은 곳에’란 영화 한 장면을 인용하며 강의를 하곤 했다.

“그 영화에서 여주인공은 몇 분 뒤면 총살을 당할 텐데도 간수한테 자신의 머리를 예쁘게 손질해 달라고 하잖아.”

덧붙여서 원장은 자연스럽게 이같이 강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여자의 머리 가꾸기는 본능적이고 필사적이니만큼 잘만 하면 미용실처럼 확실하게 수익을 보장하는 사업도 없노라고.

하여, 나는 미용학원을 졸업하자 강남에서도 제법 이름 난 어느 헤어 살롱에서 3년간의 ‘시다’ 노릇을 하며 경험을 쌓은 뒤, 가게 세가 싼 변두리로 나가 나 자신의 가게를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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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를 하다보면 유독 손님이 없거나 한가한 날이 있다. 여자가 찾아왔던 날, 그날이 바로 그랬다. 가게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남편인 듯싶은 사내와 함께 여자가 가게로 들어선 것은 해가 설핏 해질 무렵이었다.
“머리를 좀 다듬으려고요.”

여자가 가녀린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 여자는 아직 젊었지만 한눈에도 중환자 티가 완연했다. 몸은 서리 맞은 수숫대 같았고 얼굴은 광대뼈가 불거져 몹시 검고 거칠었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내가 여자의 뒤엉킨 머리를 매만지며 묻자 여자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알아서 제일 예쁘게 보이도록만 해주세요.”

여자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불현듯 예전에 원장이 곧잘 들먹이곤 하던 ‘깊은 밤 깊은 곳에’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러고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린 듯 여자의 머리를 헤집으며 가위를 정교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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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포쯤 지났을까. 그날도 손님이 없어 하품을 하고 있는데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분명 그 여자였다.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여자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마른 수숫대 같은 몸은 살이 올라 활기가 넘쳤고 얼굴도 병색과는 거리가 멀어 화사할 정도였다. 뺨은 손가락으로 찔러보고 싶을 만큼 탱탱했으며 빛깔도 뽀얀 우윳빛으로 윤기가 흘렀던 것이다.

“아이고, 그간 몰라보게 좋아졌네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그러자 여자는 자리를 잡은 뒤 거울 속의 나를 보며 겸연쩍게 웃었다.

“아마 언니 하고 착각을 한 모양인데, 그럴 만도 하죠. 언니와 나는 쌍둥이니까. 그날, 이 미용실에 언니와 형부가 들렀을 때 언니는 퇴원을 하던 길이었죠.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해줄 일이 없다기에 임종을 집에서 맞이하기 위해서요. 언니가 퇴원한다는 연락을 받고 그날 나는 퇴원하는 언니를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형부의 부축을 받으며 현관으로 들어서는 언니를 보고 깜짝 놀랐죠. 헤어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리고 예쁘게 보여서 말이죠. 그래서 언니한테 어느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느냐고 물어보았고, 오늘 이렇게 직접 들러본 거예요. 그로부터 사흘 뒤, 언니는 예상대로 우리 곁을 떠났죠.”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여자의 머리를 매만지려던 나는 가위눌림이라도 당한 듯 전율을 느꼈다.

이어서 원장의 목소리가 그것 보란 듯이 이명처럼 들려오고 있었다.

“하여튼 여자의 머리 가꾸기란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만큼이나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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