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1일 신년 방송좌담회 언급에서 비롯된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의 '영수회담' 논의가 양측의 이견이 좁혀지지 못한 채 결국 무산됐다.

2008년 9월 이 대통령과 민주당 정세균 대표 간의 회담 이후 무려 2년 5개월만에 다시 영수회담이 열릴 것이냐에 국민과 정치권의 관심이 모아졌지만 끝내 이 대통령은 제1야당 대표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영수회담은 이 대통령이 1일 신년 방송좌담회에서 영수회담 용의를 묻는 패널의 질문에 "연초 시작하니까 한번 만나야겠다"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민주당은 차영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신년 방송좌담회에 대해 전체적으로 "진정성이 없다"고 비판했지만, 영수회담에 대해서 만큼은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환영의 뜻을 나타내 영수회담 분위기가 무르익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여기에 6일에는 한나라당 김무성,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14일 국회를 정상화하고 지난주 안에 영수회담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전격 합의해 영수회담이 임박했다는 관측까지 돌았다.

그러나 청와대 및 민주당 대표와의 교감 없이 이뤄진 여야 원내대표 합의는 오히려 모처럼 재개될 조짐을 보였던 영수회담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청와대와 민주당 손 대표측은 곧바로 영수회담은 원내대표 간에 논의될 사안이 아니라며 반발,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백지화했다.

양측은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양승조 민주당 대표비서실장' 채널을 구축해 재협의해 나섰지만 일단 한번 어긋난 상황은 쉽게 수습되지 않았다.

재협의 과정에서 양측은 안팎의 시선을 고려, 이전보다 더 명분과 의전에 집착했다.

민주당은 국회 정상화 이전에 영수회담이 개최돼야 하며 이 대통령이 지난해말 여당의 예산안 단독처리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이 제1야당 대표와 만나 허심탄회하게 국정운영을 논의하자는 취지의 영수회담에 이런저런 전제조건을 붙이는 것은 지나친 정략이라고 비판하면서 일단 국회를 정상화한 뒤 영수회담을 열어야 한다고 맞섰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영수회담이란 표현은 여당 대표를 대통령의 '거수기' 정도로 격하하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청와대 야당 대표 회동'으로 정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다가 손 대표측이 11일 간접적으로 이 대통령의 유감표명 부분은 철회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청와대도 굳이 그렇게 조건을 걸지 않더라도 이 대통령이 손 대표를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 부분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금주중 영수회담이 성사되는 게 아니냐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이 과정에서 이재오 특임장관은 민주당측에 이 대통령이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와 함께 먼저 `3인 청와대 회동'을 한 뒤 그 직후 이 대통령과 손 대표가 영수회담을 진행하는 절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고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가 주장했다.

하지만 주말을 거치면서 청와대와 민주당 모두 더 이상의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손 대표는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 정상화를 선언하고 영수회담 거부 의사를 명확히 하면서 13일간의 영수회담 협의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청와대는 민주당의 국회 정상화 선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 대통령은 언제든 야당 대표와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며 영수회담의 문을 완전히 닫아걸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이 거부한 마당에 굳이 청와대가 나서서 영수회담의 불을 다시 지필 이유가 별로 없는 만큼 영수회담 재개는 일단 물거품이 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특히 이날 손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공부하라", "독재화의 길로 들어선 이명박 정권" 등 강경한 표현을 동원한 것도 이 대통령과 청와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기때문에 영수회담 논의가 다시 나오려면 어느 정도의 냉각기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 간의 단독 회동이 2년 이상 이뤄지지 않고 있고, 두 사람이 오랜만에 만나는데 이처럼 온갖 기싸움이 필요한 정치 현실에 대해 공감할 국민이 과연 몇이나 되겠느냐는 따가운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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