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가축 매몰지 곳곳 부실..2차 환경오염 우려
공무원 "매뉴얼 바꿔야"..정부, 오염 조사 나서

(전국종합=연합뉴스) 구제역 살처분 가축을 매몰하는 작업이 부실하게 진행되면서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매뉴얼을 무시한 채 마구잡이식으로 매몰하면서 지하수 오염 등 2차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매몰지 주변 주민들의 반발로 매몰작업이 중단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구제역 매몰에 따른 침출수 유출과 2차 환경오염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자 정부와 한나라당은 소.돼지 집단 매몰지에 대한 환경오염 전수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괴산군이 깊이 5m, 길이 10-15m의 구덩이 2개를 파 돼지를 묻은 이곳에서 매몰 3일 만에 살처분 돼지의 핏물이 흘러나와 5-6m 떨어진 계곡으로 흘러들어 갔다.

비가 내리면 계곡 위쪽과 축사에서 빗물이 유입되는 곳인데도 괴산군이 적당한 매몰지를 찾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그곳에 가축을 매몰한 것이다.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판대리에서도 지난달 5일 돼지 1천800여마리를 묻은 매몰지에서 침출수가 흘러나와 긴급하게 침출수를 막는 조치를 했다.

구제역 가축을 이같이 하천이나 계곡, 마을과 가까운 곳에 매몰하면서 침출수에 의한 하천과 지하수 오염을 걱정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충주시는 지난 7일 가금면 봉황리의 한 돼지농장의 구제역 돼지 2천600여마리를 살처분하려고 마을 앞 한포천 옆에서 구덩이를 파다 마을 주민의 반발로 매몰작업을 중단했다.

장마 때문에 범람한 적이 있는데다 매몰지에서 50여m 떨어진 곳에 돼지를 묻으면 하천이 오염되고 여름철에 범람이라도 하게 되면 마을 전체가 오염된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시는 하천 변 30m 이내에 매몰지를 선정할 수 없도록 한 환경부의 가축 매몰지 환경관리지침에는 어긋나지 않았지만, 주민의 반대를 꺾을 수 없었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의 한 마을에서도 민가와 1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구제역 가축을 묻는 바람에 지하 30m 관정을 뚫어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는 마을 주민들이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나섰다.

구제역 발생 지역 주민이 이같이 반발하는 것은 시.군이 구제역 가축을 매몰하면서 환경부의 매몰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이 주된 이유다.

실제로 경기도가 구제역 가축 매몰로 인한 2차 오염 방지를 위해 지난 5-6일 구제역 가축 매몰지 1천954곳 중에서 627곳을 점검했더니 40%가량이 매몰 매뉴얼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4곳은 가수배출관 설치 부적절, 35곳은 성토 부족, 109곳은 매몰지 관리카드 미비치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고 일부 구제역 매몰지는 하천과 충분한 거리를 두지 않았다.

◇ 공무원 "현실과 동떨어진 매뉴얼 바꿔야" = 40일 넘게 구제역과의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시.군 공무원들은 매몰지를 찾기가 어려워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충북 괴산군 관계자는 "정부의 구제역 발생가축에 대한 매뉴얼이나 가이드라인이 현실에 맞지 않아 현장에서 어려움이 많다"며 "발생지 500m 이내에 가축을 매몰하라는 규정이 있지만, 그 안의 범위에서 적당한 매몰지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경북 경주시 관계자도 "구제역 발생 농장주 소유의 땅 이외에는 가축을 묻을 수 없어 매몰지 찾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매몰이 아닌 다른 처리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매몰작업에 참여한 충남 보령시의 한 공무원은 "구제역 의심 증상이 발생하면 해당 농가의 가축을 모두 살처분하라고 방역 당국이 지시하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주민들의 반발로 매몰지를 찾기가 어려웠다"며 "발생지 주변에서 매몰지를 찾는 게 어려운데 어떻게 매뉴얼을 그대로 지킬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경기도 김포시 관계자도 "김포는 평야지역이라 어느 곳에나 다 하천이 있는데, 이 하천 옆을 피해서 묻으려고 보면 마땅한 매몰지가 없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 매몰지 45곳 부실..정부 대책 마련 나서 = 구제역 가축의 부실매몰에 따른 피해와 우려가 잇따라 제기되자 시.군은 우선 상수도 설치와 가스배출관 교체 등 긴급 조치에 나섰다.

모두 9차례에 걸쳐 구제역이 발생, 8만 2천여마리의 소.돼지를 매몰한 충남 보령시는 매몰지 주변 지역 주빈의 반발이 커지자 23억원을 들여 매몰지 반경 3㎞에 상수관로 13㎞를 설치하기로 했다.

김포시도 지하수를 식수로 이용하는 92개 매몰지 가운데 62곳에 지난달 31일 상수도 공급시설을 설치한 데 이어 앞으로 나머지 30곳에도 최대한 공사를 서둘러 주민의 불안을 해결할 계획이다.

또 매몰지 가스배출관 교체나 빗물 유입 방지 시설 설치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와 한나라당도 지난 10일 구제역 매몰지 환경오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구제역 후속 대책회의를 열고 환경부와 행정안전부 주관하에 환경오염 전수조사를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 대책회의에서는 전국의 매몰지 4천200곳 중 42곳이 부실로 드러남에 따라 현재 매뉴얼대로 하면 침출수 피해 해결이 어려워 고온멸균 처리방식이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정부 대책과 별도로 경기도는 구제역 가축의 처리방식을 매몰에서 소각으로 개선하고자 이동식소각시설 도입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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