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명인, '구당서' 등 고증 통해 '초적' 우리네 전통음악임 밝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초적, 음악 치유에도 긍정적 영향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전통 계승 발전에 힘 실어줘야

영암 박찬범 명인이 풀피리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11.14
영암 박찬범 명인이 풀피리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 ⓒ천지일보 2019.11.14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한국의 풀피리(草笛)는 국제 ‘인도주의의학(TANG ‘HUMANITAS MEDICINE’)’ 학술논문(2018년 2월 8권 1호)에 ‘박찬범이 연주한 풀피리 음악이 피로 회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됐다. 

특히 해당 논문에서는 자연의 소리에 가장 가까운 박찬범의 풀피리 음악을 통해 인체 치유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더욱 연구해야 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세계적인 학술논문에 풀피리의 효능에 대해 소개되기까지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 초적 예능보유자 박찬범 명인의 공이 컸다.

풀피리는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연주해온 민속음악의 하나로 나무껍질이나 잎사귀 등을 악기로 삼아 소리를 내어 부는 음악이다.

언제부터 풀피리가 불렸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삼국사기(권 32, 잡지1)’에 의하면 고구려와 백제에서 도피필률(桃皮觱篥 또는 管木)이라 해 풀피리가 연주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중국 문헌인 ‘구당서(舊唐書, 권 29, 樂志)’에도 도피필률이 고구려와 백제 음악으로 존재했다고 기록돼 있어 고구려와 백제의 고유 음악인 풀피리가 중국에서도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암 박찬범 명인의 풀피리 기념비 ⓒ천지일보 2019.11.14
영암 박찬범 명인의 풀피리 기념비 ⓒ천지일보 2019.11.14

우리네 전통음악 풀피리
중국의 문헌 ‘구당서’에서 도피필률이 기록된 것을 발견해 풀피리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임을 밝힌 것도 바로 영암 박찬범 명인이다.

이뿐 아니다. 박 명인은 고구려 고분인 안악3호분의 벽화에 나타난 행렬도에서 의장대와 기마병 뒤에 도피피리 악사가 등장하고 있음을 세상에 알렸다. 박 명인의 노력으로 풀피리에 대한 내용이 중학교 역사부도 및 한국사 2016년 고등학교 국정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으며, 두산백과사전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초적(풀피리)에 대한 내용이 등재돼 있다.
 

고구려 고분인 안악3호분의 벽화에 나타난 행렬도에 도피피리 악사가 등장한 모습(원 안쪽) ⓒ천지일보 2019.11.14
고구려 고분인 안악3호분의 벽화에 나타난 행렬도에 도피피리 악사가 등장한 모습(원 안쪽) ⓒ천지일보 2019.11.14

우리나라 특히 고구려의 독자적인 음악인 도피필률(산복숭아 껍질)은 세월이 흐르면서 나뭇잎이나 두꺼운 풀잎으로도 불 수 있어 풀피리(草笛)로 불렸으며, 그 활용가치가 넓어졌고 방법도 다양해질 수 있었다. 이후 그 위상이 높아져 고려시대 이후에는 왕실음악으로 발전돼 조선시대에는 민족음악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고려시대에 풀피리가 유행했다는 사실은 이규보 선생이 쓴 한시(漢詩) ‘동국이상국집’ 권 53을 통해 알 수 있다.

조선 전기 서거정이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조야(朝野)의 한담(閑譚)을 소재로 서술한 ‘필원잡기(筆苑雜記)’에도 “지중추 홍일동은 인격이 우뚝하게 뛰어나고 성품이 천진하며 겉치레를 꾸미지 아니하였다. 사부에 능하고 술을 많이 마셨는데 정신없이 취하면 풀잎으로 피리 소리를 내었는데 그 소리가 비장하고 위엄이 있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이렇듯 그 명맥을 이어오던 풀피리는 일제강점기이던 1934년 강춘섭의 초금독주음반이 발견돼 경성방송국에서 공연한 기록을 남긴 후 그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풀피리의 명맥을 이어온 이가 바로 영암 박찬범 명인이다.
 

영암 박찬범 명인이 저술한 책과 직접 작사, 작곡한 풀피리 음반 ⓒ천지일보 2019.11.14
영암 박찬범 명인이 저술한 책과 직접 작사, 작곡한 풀피리 음반 ⓒ천지일보 2019.11.14

풀피리, 유네스코 등재 추진해야

박 명인은 풀피리가 지닌 탁월한 음감을 살려 박찬범 류 ‘나그네 풀피리’ ‘시나위’ ‘동살풀이’ 등 직접 작사, 작곡한 수많은 곡들을 탄생시켰으며, 각고의 노력으로 ‘풀피리’가 우리나라의 전통음악임을 알린 공을 인정받아 2000년 4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기에 이르렀다.

박 명인에 의해 고증된 풀피리는 전통음악뿐 아니라 동‧서양의 모든 음악을 가능케 하는 악기다. 박 명인은 1991년 3월에는 국내 최초로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협연으로 풀피리시나위를 연주했으며, 2012년에는 ‘2012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보호 국제회의’에 초청돼 초적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립대극장에서 중앙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한 영암 박찬범 명인의 모습(1999년 1월 20일) ⓒ천지일보 2019.11.14
국립대극장에서 중앙국악관현악단과 협연한 영암 박찬범 명인의 모습(1999년 1월 20일) ⓒ천지일보 2019.11.14

박 명인은 오래전부터 역사‧문화적 존재 가치가 분명한 풀피리와 풀피리시나위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오래도록 보존해야 한다고 외쳐왔다. 그 배경에는 중국에서도 풀피리를 ‘수엽’이라 부르며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도 비슷한 상황이다.

박 명인은 도피피리의 저변확대뿐 아니라 풀피리가 인체 치유에 미치는 음악적 효능을 입증해 내는 데 있어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그의 음악을 찾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그가 풀피리와 함께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70년을 향해 간다. 풀피리 전수에도 힘을 쏟고는 있지만 한계숙 전수장학생 외에 박찬범 류 풀피리를 계승할 만한 실력을 갖춘 후계자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고증을 통해 어렵게 우리의 것임을 밝혀낸 풀피리다. 서울시 무형문화재에 멈춰 있는 ‘초적’을 하루라도 빨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풀피리의 전승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관계자들의 몫일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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