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저공 비행 긴장 고조, 충돌은 없어
엘바라데이, 야당.반정부단체 교섭대표로 나서

(카이로=연합뉴스) 30일 오후 이집트 수도 카이로와 수에즈 등 주요 도시에는 군인과 탱크, 장갑차 등이 배치된 가운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완전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6일째 이어졌다.

진압 경찰이 빠져나간 틈을 타 상가 등에 대한 약탈과 파괴, 탈옥 등 치안 공백이 빚어지고 있고 각국 정부는 전세기를 편성하는 등 자국민 보호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이집트 내 야당과 반정부 단체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정부와의 협상에 나섰으며, 국제사회는 무바라크 정권에 보다 개혁적인 조치를 촉구했다.

◇도심 장악한 시위대…통금 무용지물 = 이날 카이로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는 날이 밝으면서 시민들이 한 두 명씩 모여들기 시작해 오후 들어 규모가 1만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호스니 무바라크, 오마르 술레이만은 미국의 대리인' 또는 `무바라크,,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다'는 등의 구호를 외쳐대며 무바라크 대통령의 완전 퇴진 등을 요구했다.

탱크, 장갑차 등이 주요 지역에 배치되고 군인이 곳곳을 장악했지만 군인과 시위대 사이에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일부 시위대는 탱크에 올라가 구호를 외치기도 했고 시위대와 군인이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시위대가 군인들을 무등태우는 등의 장면도 목격됐다.

이날 오후 4시부터 통행금지가 실시됐으나 시위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무바라크의 퇴진을 촉구했고 군도 통금을 어긴 시위대에 대해 연행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일요일인 이날은 일주일이 시작되는 날로 정상 근무일이지만 은행과 증시 등은 모두 문을 닫았다.

이날 오후 군 전투기 2대가 굉음을 울리며 카이로 상공을 저공비행하고 헬기가 시위대가 몰려 있는 지역 주변을 선회했으며, 어둠이 내리면서 군 트럭이 증강 배치되는 등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위대는 월요일인 31일 무바라크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곳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기로 해 유혈 충돌이 우려된다.

지금까지 최소 100여 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리라는 사망자가 15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궁지에 몰린 무바라크 =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명한 술레이만 부통령과 총리 등은 이날 공식 업무를 시작했으며, 무바라크 대통령은 모하메드 후세인 탄타위 국방장관 등 군 지도자들을 만나 사태 수습책 등을 논의했다.

무슬림형제단 등 반정부단체들은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명한 새로운 내각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과도 정부 구성 방안 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사무총장은 이날 오후 카이로 도심 시위에 참석하기에 앞서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은 이집트 모든 사람이 원하는 명백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엘바라데이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임시 대통령을 맡을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이집트 국민이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가교로서 내가 역할하기를 원한다면 여기서 그들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알 아라비야 TV는 시위군중을 대표하는 그룹들이 엘바라데이를 과도정부의 책임자로 지명했다고 보도했다.

최대 야당단체 무슬림형제단의 대변인 가말 나세르는 dpa에 무바라크 대통령의 여당 국민민주당을 배제한 거국정부의 구성을 엘바라데이와 논의 중이라고 확인했다.

2005년 대선에 출마했던 야당 정치인 아이만 누르도 야당 진영이 정부와의 요구조건을 협상할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누르는 사실상 정권 인수위원회 역할을 할 위원회에는 엘바라데이와 무슬림형제단의 고위 지도자 등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무바라크 정권에 대해 보다 개혁적인 조치를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도 잇따랐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CNN방송과 폭스뉴스 등에 출연, 무바라크 대통령이 자국민의 요구에 화답할만한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집트의 부통령과 총리 임명 조치는 미국이 줄곧 요구해 온 민주화 및 경제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자, 시발점에 불과하다면서 사실상 추가적인 조치를 무바라크 정권에 촉구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집트에 '진정한 민주화'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면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민주화에 도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도 제16차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담 참석차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튀니지와 이집트 사태에 대해 "프랑스는 두 나라 국민을 지지한다"고 전제한 후 "지도자들은 변화가 오면 이를 솔선수범하지 않는다 해도 그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폭력은 그 근원이 어디든지 간에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프랑스는 이런 평화적인 변화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이날 직접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적인 개혁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고 영국 언론들은 전했다.

◇치안 공백…약탈.탈옥 등 혼란 = 전날 밤 일부 폭도들은 경찰이 철수한 공백을 틈타 상가를 부수고 물건과 식료품 등을 약탈하는 등 혼란이 빚어졌다.

대통령궁 인근의 헬리오폴리스 지역을 포함한 카이로 곳곳에서는 흉기로 무장한 약탈자들이 슈퍼마켓과 쇼핑몰에서 물건을 훔치는 모습도 목격됐다. 현금지급기도 약탈자들에게 털려 작동이 중단됐다.

주택가에서는 시민들이 몽둥이와 체인, 칼 등을 든 채 거리를 순회하며 약탈에 대비하고 있으며 범인들을 붙잡아 군 당국에 넘기기도 했다.

군 당국은 지금까지 카이로에서 450명, 수에즈에서 63명 등의 약탈자들을 체포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카이로 인근 파윰과 와디 나트런 등지의 교도소에서 수감자 수천여 명이 전날 밤 탈옥했으며 이 과정에서 수십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정치범들이 많이 수용돼 있는 와디 나트런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한밤중에 교도관들을 제압하고 탈출했으며 이 중에는 대표적인 반정부 단체인 무슬림형제단 소속 간부 등 34명도 포함돼 있다.

◇ 탈출 러시…한인도 출국 행렬 = 시위에 따른 사상자가 잇따르고 치안 공백현상이 빚어지면서 각국 정부는 자국민을 철수시키거나 여행을 제한하는 등 자국민 보호조치를 내놓고 있다.

영국 외교부와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관은 자국민에게 이집트를 떠날 것을 권고했다.

미국 대사관은 자발적으로 이집트를 떠나기를 희망하는 자국민들에게 항공편을 제공, 유럽의 안전한 장소로 소개할 방침이며, 현지 외교관의 가족 및 공관 내 필요인력 이외의 직원들을 31일부터 소개하기로 했다.

앞서 사우디 아라비아와 레바논, 아랍에미리트(UAE), 요르단은 이미 특별기 10대를 투입, 외교관과 가족 등을 출국시켰다.

터키도 2대의 터키에어라인 특별기를 투입해 몇 차례로 나눠 자국민을 실어나르기로 했고, 이라크도 항공기를 이용해 자국민들을 실어나를 예정이다.

한국 교민과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은 이날 카이로에 있는 아프리카지역본부를 임시 폐쇄하고 주재원의 경우 중동지역 본부가 있는 두바이로, 가족은 전원 귀국토록 조치했다.

이에 따라 현대차 소속 주재원 9명과 기아차 3명, 모비스 1명은 이날 오후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하고, 이들의 가족 36명은 두바이와 바레인 등을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이집트에서 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LG전자 현지 법인은 주재원의 가족 30명에 대해 희망자에 한해 귀국을 지원하기로 했고, 삼성전자 지사도 가족들을 공항 근처 호텔에 투숙시킨 뒤 내달 1일께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토록 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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