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영암군민회관에서 전동평 영암군수를 비롯한 내외귀빈이 참여한 가운데 을묘왜변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창립총회가 열린 후 참여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영암군) ⓒ천지일보 2019.9.27
지난 25일 영암군민회관에서 전동평 영암군수를 비롯한 내외귀빈이 참여한 가운데 을묘왜변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창립총회가 열린 후 참여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영암군) ⓒ천지일보 2019.9.27

[천지일보 영암=김미정 기자] 전남 영암군이 지난 25일 영암군민회관에서 전동평 영암군수를 비롯한 내외귀빈이 참여한 가운데 을묘왜변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회장 장만채) 창립총회를 열었다.

의병장 양달사는 1555년 5월 25일 형제들과 의병을 일으켜 영암성을 포위한 왜구를 물리친 후 홀연히 사라졌다. 1555년 12월 2일 조선왕조실록에는 ‘공이 있는 양달사는 어디로 갔는가(有功達泗歸何處)’라는 한탄스런 시구도 기록돼 있다.

장만채 회장은 기념사를 통해 “1000여 동안 우리 민족을 괴롭힌 일본의 왜구 근성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면서 “양달사의 충효 정신을 널리 선양해 영암이 의병의 고장이고 양달사가 호국영웅임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영암군에 따르면 양달사 현창사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842년에는 전주향교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양달사의 공적과 국가 차원의 표창을 건의하는 통문을 돌렸고, 1847년 10월 19일 좌승지로 추증되는 성과도 있었다. 

지난 1971년에는 김기회 영암군수가 영암군청 앞의 장독샘에 공적비를 세웠고 1974년에는 허련 전남도지사와 강기천 국회의원 등을 고문으로 김연수 영암군수가 도포 봉호정의 양달사 어머니 묘지에 ‘호남창의영수(湖南倡義領袖) 양달사 선생 순국비’도 세웠다. 그러나 의병장이라는 이유로 조정에 보고조차 되지 않은 그는 464년이 지난 지금까지 역사의 뒤편에 갇힌 채 영암군에서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25일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창업총회가 열린 가운데 영암군이 주최하고 ㈔호남의병연구소가 주관한 ‘을묘왜변과 의병장 양달사의 영암성 수성활동 학술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제공: 영암군) ⓒ천지일보 2019.9.27
지난 25일 의병장 양달사 현창사업회 창업총회가 열린 가운데 영암군이 주최하고 ㈔호남의병연구소가 주관한 ‘을묘왜변과 의병장 양달사의 영암성 수성활동 학술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제공: 영암군) ⓒ천지일보 2019.9.27

이에 영암군 관계자는 “이번에 영암군민과 재경, 재광 영암군향우회 등이 중심이 돼 양달사 현창사업회를 발족한 것은 그동안 향사 차원의 위인으로 머물렀던 양달사 의병장을 역사의 전면에 내세우려는 영암군민들의 최초의 시도로 호남 의병사에 새롭게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창립총회에 이어 영암군이 주최하고 ㈔호남의병연구소(소장 노기욱)가 주관한 ‘을묘왜변과 의병장 양달사의 영암성 수성활동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됐다. 그동안 역사에서 철저히 소외됐던 양달사 의병장이 국내 사학계에서 처음으로 을묘왜변의 중심인물로 다뤄졌으며 조선 시대 영암의 선소를 통해 영암이 갖는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살펴보는 시간이 됐다.

행사에 참석한 전동평 영암군수 및 영암군 각급 기관사회단체장들은 “양달사 현창사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편 양달사 현창사업회는 오는 2020년 전라남도에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을 신청한 후 영암군과 협의해 장독샘 정화사업과 시묘공원 정비사업, 영암성대첩 기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면서 양달사 현창사업이 대대로 이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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