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서울 서쪽 경계를 지나 인천시 외곽에 있는 인천 삼산 월드체육관은 요즘 불난 호떡집 마냥 아주 부산스럽다. 이 체육관의 혼잡은 주말과 공휴일이면 절정에 달하고, 평일도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서울 외곽순환도로 등 주변 도로의 차량통행 소음은 혹한의 추위를 녹이고도 남을 체육관의 뜨거운 열기에 묻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지난해 말 인천 전자랜드의 홈 개막전이 열릴 때 인천 연고 농구팀 사상 하루 최다 관중이 몰리기도 했다.

인천 전자랜드의 열혈 팬모임인 엘리펀츠 서포터즈는 ‘파이팅’을 연호하며 선수들의 선전을 북돋고 있었다. 풍선과 막대 응원도구와 유니폼 상의 등을 준비한 일단의 서포터즈는 체육관의 전용 응원석에서 경기장이 떠나갈 듯 요란한 응원가와 구호를 외쳤다. 서포터즈의 열정이 넘친 응원 모습은 일반 관중들에게도 경기와 함께 좋은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전체적인 체육관의 전경은 선수들과 관중들이 만들어내는 잘 조화를 이룬 한편의 오케스트라 같았다.

요즘 프로농구에서 인천 전자랜드가 단연 화제이다. 인천 전자랜드는 삼성, LG, SK, KT 등 재벌회사나 재벌급 회사들이 운영하는 덩치 큰 다른 농구팀에 비해 회사규모가 왜소하고 팀 역사도 짧은 프로농구 막내팀. 하지만 올 시즌 시작부터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용산 전자랜드가 모체인 인천 전자랜드는 2003년 SK 빅스를 인수하면서 2003~2004년 시즌 플레이오프 4강에 딱 한 번 든 이후 하위권을 맴돌던 단골 꼴찌그룹이었다.

인수 이후 약 8년간 팀을 직접 챙기며 애정을 쏟아 온 홍봉철 구단주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 없었다면 전자랜드는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성적도 부진한데다 모회사의 규모가 작아 팀매각설이 심심치 않게 떠돌곤 했었다.

그러나 올 시즌 들어서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서장훈(37), 신기성(36), 문태종(36) 트리오가 3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발군의 활약을 펼치며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재정형편이 넉넉지 않은 팀 사정과 한물 간 노장들로 이루어진 선수구성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 인천 전자랜드를 프로농구의 ‘슈퍼스타 K’로 주목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

100만 명의 지원자 중에서 톱 텐을 가려 최종 생방송 무대에서 서바이벌 노래경연을 벌인 지난해 ’슈퍼스타 K’에서 환풍기 수리공 출신 허각, 미국파 존박, 고등학교를 중퇴한 싱어송 라이터 장재인 등이 전 국민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주며 대중적인 영웅으로 떠올랐던 것처럼 인천 전자랜드의 스토리도 극적인 공통 요소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슈퍼스타 K’와 같이 어려운 여건을 극복하는 불굴의 자세,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도전정신, 평이한 것을 깨뜨리는 창의성 등 무형적 가치가 녹아있는 것이다.

예전에 한때 ‘국보센터’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다가 개인 기록관리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지적을 받으며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서장훈은 올해 들어 리바운드 싸움과 수비, 패스 등으로 적극적인 팀플레이에 가담하며 분위기를 크게 바꿨으며 신기성은 폭넓은 볼배합과 슛감각을 발휘하며 예전 국내 최고의 가드로서의 면모를 다시 보여주었다.

2010 귀화혼혈선수 드래프트 1순위로 인천 전자랜드 유니폼을 입은 문태종은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주며 팀의 슛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 트리오는 과거의 화려한 이름값을 내던지고 현재의 어려운 팀 여건에서도 다시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신념을 보여준 것이다.

선수들과 마음을 열고 개개인의 기량을 극대화시킨 유도훈 감독의 탁월한 지휘역량도 주목할 만하다. 전임 최희암 감독, 박종천 감독 등에 비해 지명도에서 뒤떨어지는 유도훈 감독이지만 ‘이대로 물러나지 말자’며 선수들을 채근해 팀 재기의 발판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인천 전자랜드는 최근 선두 KT와의 연전에서 패해 상승세가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주말 올스타 브레이크로 1주일간 일단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돼 전력의 핵인 30대 후반의 서장훈 등 노장트리오들이 체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잘난 이만 성공하는 평이한 스토리가 아닌 부족한 이도 빛을 보며 상승 사다리를 타는 반전이 넘치는 프로농구가 되기 위해서는 인천 전자랜드와 같은 팀이 ‘슈퍼스타 K’와 같은 극적인 성공을 거둬야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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