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원 작가

기업을 이끌고 있는 리더들은 마치 홀로 정점에 서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알고 있다. 자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고,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 대중들이 그것을 아주 꼼꼼하게 분석하고 따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제로 대중들은 자신의 일보다 더 꼼꼼하게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고든다. 리더들은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극심한 불안을 느끼며 다수가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직원들을 챙겨야 하고, 대중들의 눈도 의식해야 하는 위치에서 홀로 고통을 겪다가 나쁜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 과도하게 권한을 위임한다거나, 어려운 결단이 필요한 일은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진보의 목소리를 내던 탤런트가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극렬한 보수주의자가 되고, 괜찮았던 국회의원이 변변찮은 대통령이 되고, 최고의 성과를 올리던 직원이 무능한 관리자가 되는 것이다.

일본의 장수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화다. 당시 하급 장교였던 히데요시가 신년 축하연에 참석했다가 보병의 창에 관한 논쟁을 벌이게 되었다. 창을 빈번하게 사용했던 몬도가 단창의 장점을 내세우면 히데요시는 그 반대인 긴 창의 장점을 주장하는 식으로 논쟁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서로 양보 없는 논쟁을 벌이다가 결국 그들은 각자 보병 50명씩을 거느리고 한판 겨루어 결판을 내기로 했다. 경기는 3일 후에 하기로 했고, 그 기간 동안 몬도는 보병 50명을 모아 아침부터 밤까지 지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그는 어떤 방법으로 싸워야 짧은 창을 가지고 긴 창을 가진 사람의 공격을 피해 효과적으로 적을 공략할 수 있는지를 연습시켰다. 하지만 히데요시의 생각은 달랐다. 그런 전략과 전법은 3일 동안 연습한다고 몸이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조금은 색다른 전법을 구상했다. 그는 연습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고, 술과 음식을 마음껏 마시도록 하면서 군사들을 선동하는 데 힘을 썼다.

그는 술판을 벌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신호를 보내면 함성을 지르면서 공격하라. 뛰어가 녀석들의 머리를 흠씬 두들겨 패주는 것이다. 저쪽 군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거리를 유지하면서 긴 칼을 휘둘러라. 그러면 반드시 이긴다. 이기면 또 지금처럼 근사하게 한 턱을 낼 것이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연습 대신 술판을 붙이곤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데 힘을 모았다.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고, 승부는 너무나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짧은 창을 든 군사들이 의욕을 잃고 멍하니 서 있는 동안 히데요시의 보병들은 그들에게 달려가 가슴을 찌르고 머리를 공격해 보기 좋게 상대 군사들을 이긴 것이다. 결국 승부를 가른 결정적인 요인은 실력이 아니었다. 실력은 어차피 거의 같은 수준이었다. 승자와 패자를 가른 요인은 바로 기세였다. 빨리 이기고 돌아가 축하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에 가득 차 활화산 같은 기세를 가진 상대를 누르긴 어려운 일이다.

리더의 역할을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말 잘 알려주는 이야기다. 조직을 잘 이끌어 패배하지 않기 위해서는 뒤로 물러나지 않고 가장 앞에 서서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신입사원보다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자신이 말한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리더는 지속적으로 엄청난 이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리더의 역할을 수행했던 게 바로 이부진이다. 그녀는 스스로 그렇게 일을 했기 때문에 직원들의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고, 가끔 실수를 했을 때도 흔히 들을 수 있는 험담을 듣지 않고 빠져 나올 수도 있다. 또한 직원들이 리더를 보며 자발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일을 열심히 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사실 아직도 제일모직의 조직문화는 여전히 일정 부분은 보수적이라는 말이 젊은 직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돈다. 한 직원은 “숨 막힐 듯한 관료주의가 첨단을 달려야 하는 패션 업체에서 과연 말이나 될 일인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서현의 역할이 부각된다. 숨 막힐 듯한 관료주의에서 직원들이 숨을 쉴 수 있도록 공기청정제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라’처럼 다양한 디자인을 빠른 시간 내에 공급하는 세계적인 추세에 적합한 의사결정 과정을 만드는 데 일조한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업인 패션을 워낙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안에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직원들과의 간극을 줄이고자 노력했던 그녀의 모습이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이서현은 조직에서 자신이 ‘공주님’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혔다. 이는 후계자나 재벌 3세로서의 후광을 통해 성과를 얻겠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 성과를 내겠다는 공언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이부진과 이서현은 직원들의 근거 없는 헛소문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고, 좀 더 직원들의 선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녀들에게 강력한 리더십을 선사해준 것이다. 직원들은 그녀들의 몇 마디 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더욱 집중해서 바라보게 된다. 이를 통해 직원들은 업무를 하는 데 있어서 전에 없던 집중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직원들은 그녀들과 함께 일을 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 일할 땐 좀 힘들지 모르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능력이 몇 배 이상으로 향상됐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