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경으로 향하는 온두라스 이민자들이 18일(현지시간) 뗏목을 타고 멕시코 시우다드 이달고의 과테말라와의 접경 구역인 수치아테 강을 건너 멕시코로 향하고 있다(출처: 뉴시스)
미국 국경으로 향하는 온두라스 이민자들이 18일(현지시간) 뗏목을 타고 멕시코 시우다드 이달고의 과테말라와의 접경 구역인 수치아테 강을 건너 멕시코로 향하고 있다(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온유 객원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미 출신 이민자들(캐러밴·Caravan)을 줄이고자 멕시코·과테말라 등에 더 많은 망명 신청자들을 유치토록 하는 이른바 ‘안전한 제3국 협정’을 과테말라 측이 사실상 파기했다가 하루만에 두손을 들고 협정에 사인했다.

‘안전한 제3국 협정’에 사인하지 않을 경우 과테말라에 관세 부과 등 보복을 예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협정이 강제와 위협이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불법 이민자 행렬을 막기 위해 압박전선을 확대했다고 BBC는 26일(현지시간) 전했다.

대(對)이민 강경책을 펴온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이미 올해 초부터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중미 3개국에 원조중단이라는 고강도 압박카드를 빼들었다.

미국 국무부는 미국 국경으로 오는 불법 이민자들의 수를 줄이기 위한 3개국 정부의 구체적인 조치에 만족할 때까지 원조 프로그램이나 국가들에 새로운 자금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지난 3월 트윗에서 멕시코가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면서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과테말라도 마찬가지로 수년간 우리의 돈을 가져가 놓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비난했었다.

결국 반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관세위협을 이기지 못한 과테말라가 중미 이민자들을 자국에 더 많이 수용하기로 하는 ‘안전한 제3국 협정’을 미국과 체결하며 무릎을 꿇었다.

26일(현지시간) 케빈 매컬리넌 미 국토안보부 장관대행과 엔리케 데겐하르트 과테말라 내무장관은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민자 망명 관련 협정문에 서명했다.

BBC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양국간에 역사적인 ‘안전한 제3국’ 협정을 체결한다”고 예고하며 “굉장한 날이다. 획기적인 협정 덕에 코요테(불법이민 알선 브로커)와 인신매매범들은 앞으로 일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수개월 전부터 미국으로 직행하는 이른바 ‘중남미 캐러밴’의 망명을 사실상 받아들이지 않기로 하고 망명 신청에 앞서 경유지인 멕시코 등에 먼저 망명을 신청하라며 칼을 빼들었다.

트럼프는 이번 ‘강제협정’ 여세를 몰아 온두라스, 벨리스 등에게도 송금 금지, 여행금지 국가 지정, 관세 폭탄 등 압박카드를 꺼내들어 캐러밴을 먼저 수용하게 끔 하는 모든 강제적 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

최근 미국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 티모시 켈리 판사는 중미 이민자 행렬(캐러밴)의 망명 신청을 사실상 원천 차단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시행을 막아달라는 시민단체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켈리 판사는 시민단체 ‘캐피털 에이리어 이민자 권리 연대’가 제기한 소송에서 행정부의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이 단체의 업무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본다는 증빙이 없다면서 이같이 판시했다.

이번 판시로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이민자 퇴출 정책과 미국에 망명 신청을 내는 것을 원천적으로 불허하는 조처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BBC와 CNN은 미 법무부와 국토안보부는 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 등 중미 3개국 출신 이민자들이 제3국을 경유해 미국 국경에 도달할 경우 경유하는 국가에 먼저 망명 신청을 하도록 하고 곧바로 미국에 망명 신청을 할 수 없도록 하는 트럼프 정책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멕시코 역시 과테말라의 이번 협정으로 곤경에 처해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온두라스·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은 과테말라 또는 멕시코에, 과테말라 이민자들은 멕시코에 먼저 망명을 신청하도록 할 경우 가장 많은 이민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멕시코는 캐러밴으로 몸살을 앓을 수 있다.

멕시코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미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중미 이민자 차단을 요구함에 따라 지난 6월 남부와 북부 국경에 국가방위군을 배치하는 등 강력한 이민자 억제 대책을 펼치고 있다. 국가방위군 배치 이후 미국으로 들어가는 중미 이민자의 수가 36% 감소한 것도 이같은 결과다.

‘안전한 제3국’ 협정이 발효되면 미국행을 희망하는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은 미국 대신 첫 경유지인 과테말라에 망명 신청을 하게 된다. 미국으로서는 중미 이민자들의 망명 신청 건수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조치다.

이버 협정 체결 후 트럼프 대통령은 과테말라 정부를 치켜세우며 이제 과테말라가 “미국의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과테말라 정부는 이날 대국민 성명에서 ‘안전한 제3국’ 협정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은 채 미국과의 합의 소식을 전하며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인들의 망명이 적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테말라는 또 이번 협정이 2년간 유효하다며 협정 체결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중대한 파급효과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강제협정’에 대해 세계 인권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비영리기구 레퓨지 인터내셔널은 성명에서 “과테말라는 망명 신청자들에게 있어 절대 안전한 곳이 아니다”며 “중미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앰네스티도 “트럼프는 안전한 곳에서 삶을 재건하려는 이들에게 문을 닫아거는 잔인하고 불법적인 정책을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내에서는 불법이민자 추방 작전이 한창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는 23일(현지시간)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이 이번 추방 작전을 통해 체포한 이민자 수가 35명에 불과하다며, 당초 ICE는 법원이 추방 명령을 내린 불법이민자 가족 2100명을 잡아들일 것이라는 장담이 무색케 됐다고 전했다. 지금도 애틀랜타, 볼티모어, 시카고, 덴버, 휴스턴, 로스앤젤레스(LA), 마이애미,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9개 도시에서 단속 작전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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