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주 소수서원 (출처:문화재청)ⓒ천지일보 2019.7.6
경북 영주 소수서원 (출처:문화재청)ⓒ천지일보 2019.7.6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한국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6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조선 시대 교육기관인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지난달 30일부터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되고 있는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 시각으로 이날 오후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개소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의 서원은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총 9개로 구성된 연속유산이다. 이로써 한국의 서원은 우리나라의 14번째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이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최초의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 

한국의 서원은 조선시대 16세기 사림이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서원은 한국인의 건축관(觀)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선비들의 드높은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성균관이 국립대학이고 향교가 국립지방학교라면 서원은 사립지방학교(대학)라 볼 수 있다. 

먼저 경북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 서원이다. 첫 이름은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었다. 중종 38년(1543) 풍기군수로 있던 주세붕이 처음 이 서원을 세웠다. 백운동서원은 이황이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명종에게 서원에 대한 합법적인 인정과 정책적 지원을 요청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편액과 함께 사서오경과 성리대전 등의 서적, 그 외에 노비를 하사받았다. 아울러 사서오경과 ‘성리대전’등의 서적, 노비도 내렸다.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져버린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데서 온 말이다.

◆경주 옥산서원

옥산서원(玉山書院)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1573년 문원공(文元公) 회재(晦齋) 이언적(李彦滴)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고, 1574년 선조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을 모신 서원인만큼 안동의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 남인의 양대(兩大) 서원 역할을 했고, 나아가 한국 성리학의 연총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는 서원 중 하나로 한석봉, 김정희, 이산해 등 당대 명인의 친필현판이 남아있다.

도산서원(경북 안동) (출처: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7.6
도산서원(경북 안동) (출처: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7.6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원(陶山書院)은 안동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든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에 있는 서원이다. 사적 제170호로 이황이 사망한 지 4년 후인 1574년에 설립되었다. 영남학파와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이황을 모신만큼 영남학파의 선구자인 이언적을 모신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한국의 양대 서원으로 꼽힌다.

이황은 자신의 호인 ‘퇴계(退溪)’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곱씹어 배우는 자세 즉 퇴고의 가치를 가르쳤다. 그가 도산서원에서 가르쳤던 것은 ‘인간다움’이었다. 철학적 자기를 깨닫고 거기서 찾는 행복의 기술을 말하려는 이황의 살가운 가르침이 담겨 있다.

◆안동 병산서원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은 고려 시대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었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풍산현에서 1572년 선조 5년 서애 류성룡이 안동으로 옮겨오면서부터 병산 서원의 역사가 시작됐다. 유림 선현을 모시고,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했으며, 1868년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렸을 때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보호됐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행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다시 지어졌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사적 제 260호로 지정돼 있으며 서애 선생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문헌 1000여종 3000여책이 소장돼 있다.

남계서원(경남 함양)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7.6
남계서원(경남 함양)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7.6

◆함양 남계서원

남계서원(藍溪書院)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원평리에 있는 조선시대 두 번째로 세워진 서원이다. 1552년(명종 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이 서원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창건됐으며,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다.

◆장성 필암서원

장성 필암서원(長城 筆巖書院)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로 호남에서 유일하게 문묘에 종사되고, 호남 지방의 유종으로 추앙받는 하서 김인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김인후는 도학, 절의, 문장을 두루 갖춘 선비다. 특히 김인후의 지조와 절개는 임진왜란 때 문인들의 의병 활동으로 이어지는 데, 필암서원은 유교적 가치와 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다. 도학·절의·문장 그리고 인간애를 겸비했던 아름다운 사람의 숨결이 녹아 있어 지나는 이의 옷깃을 여미게 한다.

돈암서원(충남 논산)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7.6
돈암서원(충남 논산) (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7.6

◆대구 달성 도동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道東書院)은 조선 오현의 한 사람인 문경공 김굉필(1454년~1504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68년(선조 1년) 유림에서 현풍현 비슬산 기슭에 세우고 쌍계서원이라 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첫 이름은 보로동서원이었고, 1607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면서 공자의 도가 동래했다는 의미로 도동서원이라고 했다.

◆정읍 무성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武城書院)이 있는 태인은 이미 신라 시대에 태산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신라 시대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최치원(崔致遠)도 이곳의 현령을 지냈다. 최치원이 합천의 군수로 전출된 뒤, 고을 사람들이 최치원을 기리기 위하여 유상대(流觴臺) 위에 생사당을 지었는데 이것이 선현사(先賢祠)이고, 조선 시대인 성종 15년(1484년)에 선현사를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 바로 태산사(泰山祠)로 무성서원의 전신이다. 광해군 7년(1615년)에 태산사 자리에 현지 선비들이 서원을 짓고, 80여년이 지난 1696년 사액을 받았다.

◆논산 돈암서원

돈암서원(遯巖書院)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서원이다. 김장생을 주향으로 김집, 송준길, 송시열을 종향하고 있다. 돈암서원은 인간의 도덕 원칙인 의(義)와 모든 사물의 당연한 이치인 이(理)에 대한 탐구와 실천을 중시했다. 1871년(대한제국 고종 8년)의 전국적 서원철폐령에도 철폐되지 않고 보존된 유서 깊은 전국의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1881년(고종 18년)에 이르러 숲 말의 서원이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뜰 앞까지 물이 차므로 조금 높은 지대인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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