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으로 보는 6.25전쟁] 평화의 소중함 일깨우는 역사적 생생한 기록
[사진으로 보는 6.25전쟁] 평화의 소중함 일깨우는 역사적 생생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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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잔해 속 고통(1950년 9월 30일): PAIN AND FRUSTRATION AMID THE RUBBLE OF WAR. 격전 중 북한 중공군으로부터 해방되어진 남한의 수도인 서울은 전쟁의 파편과 잔해 속에 파묻혀 있다. 한 여성이 부상을 입은 그녀 남편의 머리를 흔들고 있고 그 가족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그들의 옆에 쪼그려 앉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전쟁의 잔해 속 고통(1950년 9월 30일): PAIN AND FRUSTRATION AMID THE RUBBLE OF WAR. 격전 중 북한 중공군으로부터 해방되어진 남한의 수도인 서울은 전쟁의 파편과 잔해 속에 파묻혀 있다. 한 여성이 부상을 입은 그녀 남편의 머리를 흔들고 있고 그 가족 중 제일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그들의 옆에 쪼그려 앉아 무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6·25 전쟁 당시 종군기자로 참전해 3년간 전쟁현장을 직접 담은 미국 종군기자들의 생생한 기록물(사진)이다.

당시 미국 종군기자들은 1950년 9월 17일 인천 월미도로 한국을 상륙한 뒤 평택과 오산에서 미국 제2기갑사단과 미7보병사단에 합류, 수원성을 거쳐 서울로 들어오는 과정에 주로 촬영했다. 전쟁터에서 전쟁을 치르는 긴박했던 순간부터 눈물에 젖게 만드는 피란민의 처절했던 순간의 모습을 대부분 사진에 담았다.

사진 아래 남겨진 제목과 설명은 당시 종군기자들이 직접 기록해둔 것으로 원문을 바탕으로 번역해 설명해놨다. 

이 사진들은 왜 전쟁이 이땅에서 사려져야 하는지를 대변하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힘겨운 고통에 지친 한국어머니(1951년 4월 3일): A Korean Mother, bent over with pain, sobs as she halts with her child. 서울이남 오산지역에 위치한 전쟁터,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상황, 한 한국인 어머니가 고통으로 아이와 멈춰서 몸을 숙인 채 흐느끼며 울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힘겨운 고통에 지친 한국어머니(1951년 4월 3일): A Korean Mother, bent over with pain, sobs as she halts with her child. 서울이남 오산지역에 위치한 전쟁터,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는 상황, 한 한국인 어머니가 고통으로 아이와 멈춰서 몸을 숙인 채 흐느끼며 울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어머니 발치에 쓰러진 딸을 돕는 어머니(1951년 4월 2일): Little Korean girl collapses at her mother’s feet. 먼 피난길을 오면서 먹지 못해 쓰러진 딸을 어머니가 일으켜 세우고 있으나 지친 딸은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딸 이름을 계속 부르며 일으키려 하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어머니 발치에 쓰러진 딸을 돕는 어머니(1951년 4월 2일): Little Korean girl collapses at her mother’s feet. 먼 피난길을 오면서 먹지 못해 쓰러진 딸을 어머니가 일으켜 세우고 있으나 지친 딸은 더 이상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정신을 잃고 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딸 이름을 계속 부르며 일으키려 하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작은 유랑자들(1951년 3월 7일): These two tiny travelers head south in the western sector). 여기 두 명의 작은 유랑자가 서쪽지구의 남부를 향해 가고 있다. 그곳에는 이 두 명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피난처를 찾아서 이 곳 지역을 거닐고 있다.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작은 유랑자들(1951년 3월 7일): These two tiny travelers head south in the western sector). 여기 두 명의 작은 유랑자가 서쪽지구의 남부를 향해 가고 있다. 그곳에는 이 두 명 보다 많은 어린이들이 피난처를 찾아서 이 곳 지역을 거닐고 있다.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엄마 잃은 피란민 어린이들(1950년 10월 21, 26일 2차례 AP보도): KOREA WAR REFUGEES CHILDREN. 한국전쟁의 최악의 비극을 담은 이 사진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배수로를 따라 난 길 위에 언니는 어머니의 몸 옆에 웅크리고 있고 아이는 흐느끼며 울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엄마 잃은 피란민 어린이들(1950년 10월 21, 26일 2차례 AP보도): KOREA WAR REFUGEES CHILDREN. 한국전쟁의 최악의 비극을 담은 이 사진은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배수로를 따라 난 길 위에 언니는 어머니의 몸 옆에 웅크리고 있고, 아이는 엄마에게 젖을 달라고 울고 있다. 하지만 이미 숨진 그의 엄마는 더 이상 젖을 줄수가 없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평화를 잃은 아이(1951년 6월 25일 오후 4시 26분): No Peace for Him. for the greater part of his life, this Korean youngster has fled with his family up and down the peninsula with the tides of war. 그에게 평화란 없다. 그의 인생의 전부를, 이 작은 한국인 아이는 도망갔다. 그의 가족은 반도를 밀려오는 전쟁으로 인해 반도를 이쪽저쪽으로 피난을 다녔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평화를 잃은 아이(1951년 6월 25일 오후 4시 26분): No Peace for Him. for the greater part of his life, this Korean youngster has fled with his family up and down the peninsula with the tides of war. 그에게 평화란 없다. 그의 인생의 전부를, 이 작은 한국인 아이는 도망갔다. 그의 가족은 반도를 밀려오는 전쟁으로 인해 반도를 이쪽저쪽으로 피난을 다녔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어린 동생을 꽉 붙잡고 있는 누나(1951년 5월 2일 AP보도): A Korean girl kept a tight hold on her little brother. 한 어린 소녀가 남쪽으로 피난 가는 중, 공산당의 공세에 맞닥뜨려 언덕위에 잠시 멈추어 어린 동생을 꽉 붙잡고 있다. 남한에서 1년도 채 안 돼 세 번째 전투로 인해 이미 길은 피난민들로 꽉 막혔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어린 동생을 꽉 붙잡고 있는 누나(1951년 5월 2일 AP보도): A Korean girl kept a tight hold on her little brother. 한 어린 소녀가 남쪽으로 피난 가는 중, 공산당의 공세에 맞닥뜨려 언덕위에 잠시 멈추어 어린 동생을 꽉 붙잡고 있다. 남한에서 1년도 채 안 돼 세 번째 전투로 인해 이미 길은 피난민들로 꽉 막혔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추위와 굶주림에 울고 있는 피난민 아이(1951년 1월 16일). HELP ME, PLEASE!- How much can a little girl take? cold, hungry and in rags, a tiny Korean refugee weeps as she sits on a dock at Pusan.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 어린 소녀는 얼마나 이동 하였을까? 누더기 옷을 입고 추위와 굶주림에 부산의 부두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한 한국인 피난민 아이. 끊임없는 피난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추위와 굶주림에 울고 있는 피난민 아이(1951년 1월 16일). HELP ME, PLEASE!- How much can a little girl take? cold, hungry and in rags, a tiny Korean refugee weeps as she sits on a dock at Pusan. 제발 좀 도와주세요! 이 어린 소녀는 얼마나 이동 하였을까? 누더기 옷을 입고 추위와 굶주림에 부산의 부두위에 앉아서 울고 있는 한 한국인 피난민 아이. 끊임없는 피난이 끝나기만 기다리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어린아이가 보는 전쟁(1950년 12월 11일): A CHILD’S VIEW OF WAR. 이 작은 한국인 아이는 중국 공산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대동강을 건너 피해온 난민 중 하나였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어린아이가 보는 전쟁(1950년 12월 11일): A CHILD’S VIEW OF WAR. 이 작은 한국인 아이는 중국 공산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대동강을 건너 피해온 난민 중 하나였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총살 통곡하는 부인(1951): execute by firing squad, wife’s wailing 1951. 총살당한 남편 시신 앞에 부인이 가족과 함께 통곡하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총살 통곡하는 부인(1951): execute by firing squad, wife’s wailing 1951. 총살당한 남편 시신 앞에 부인이 가족과 함께 통곡하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피난에 지친 북한 주민(1952년 1월 19일): NORTH KOREAN REFUGEES, THEIR TIRED FACES SHOWING THE STRESS OF FLIGHT AND LONG PERIODS OF HUNGER AND DANGER… 북한 피난민들, 그들의 얼굴에서 피난의 압박과 오랜 기간의 굶주림, 위험에 지친 기색이 보인다. 휴전 교섭자들은 공산주의자 규율에 따라 이 피난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전쟁은 남북한 주민 가릴 것없이 모두가 고통받았음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피난에 지친 북한 주민(1952년 1월 19일): NORTH KOREAN REFUGEES, THEIR TIRED FACES SHOWING THE STRESS OF FLIGHT AND LONG PERIODS OF HUNGER AND DANGER… 북한 피난민들, 그들의 얼굴에서 피난의 압박과 오랜 기간의 굶주림, 위험에 지친 기색이 보인다. 휴전 교섭자들은 공산주의자 규율에 따라 이 피난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전쟁은 남북한 주민 가릴 것없이 모두가 고통받았음을 보여주는 사진이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남쪽으로 피난 가는 행렬(1951년 4월 25일): WOMEN, CHILDREN, AND OLD MEN, MAINTAIN SOME SORT OF MUTUAL AID UNIT AND KEEP TOGETHER IN THE OVERLAND MARCH SOUTH. 여성 아이들 그리고 노인으로 구성된 자들이 어느 정도 집결해 남쪽으로 가는 육로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재산으로 보이는 가축(소) 한 마리가 있는데, 특혜를 받아 짐을 지지 않고 걷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남쪽으로 피난 가는 행렬(1951년 4월 25일): WOMEN, CHILDREN, AND OLD MEN, MAINTAIN SOME SORT OF MUTUAL AID UNIT AND KEEP TOGETHER IN THE OVERLAND MARCH SOUTH. 여성 아이들 그리고 노인으로 구성된 자들이 어느 정도 집결해 남쪽으로 가는 육로로 걸어가고 있다. 그들의 재산으로 보이는 가축(소) 한 마리가 있는데, 특혜를 받아 짐을 지지 않고 걷고 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피난민 일가족들의 휴식시간 여유: Relxeing time of a family(refugees) from Suwon to Osan. 수원에서 오산으로 가는 피난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은 짚풀 속에서 자고 또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피난민 일가족들의 휴식시간 여유: Relxeing time of a family(refugees) from Suwon to Osan. 수원에서 오산으로 가는 피난민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도 보인다. 이들은 짚풀 속에서 자고 또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굶주림에 처한 아이(1951년 6월 25일 AP보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매년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굶주림에 처해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굶주림에 처한 아이(1951년 6월 25일 AP보도): 한국 전쟁으로 인해 매년 심한 타격을 받고 있다. 그곳의 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굶주림에 처해있다. (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 2019.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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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운 2019-06-26 15:52:52
조용해 보이는 이세상도 아직은 평화가 없다...

권희 2019-06-25 23:01:27
이 땅이 무슨 죄를 그리 많이지었다고 참혹한 전쟁을.. 그것도 동족끼리...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