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기 명지대학교 명예교수

일제의 침략조약인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지난 오늘, 아직도 일본 정부는 당연히 무효인 동 조약의 완전한 무효를 인정하고 있지 아니하며, 한국 정부 또한 일본 정부의 이러한 주장을 배척하려는 공식적인 어떠한 대일 조치도 취하지 아니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러므로 올해를 ‘국치의 해’ ‘울분의 해’로 기억하고 우리 모두 밝아오는 새해를 ‘성찰의 해’로 삼아야 한다.
‘한일병합조약’의 무효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동 조약은 조약의 체결권자(treaty-making power)인 국가대표(state representative)에 대해 강박을 가해 체결된 조약이므로 무효이다. 오늘날 국제법에 의하면 국가대표에 대해 강박을 가해 체결된 조약도 무효이고(‘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51조), 조약의 당사자(party to treaty)인 국가(state) 자체에 강박을 가해 체결된 조약도 무효이다(동 제52조). 동 조약체결의 서명권자인 국가대표는 총리대신 이완용(李完用)이며 1910년 8월 16일 일본군대가 이완용을 조중응(趙重應)과 함께 통감관저로 불러 이들에게 강박을 가한 사실과 8월 22일 일본군대가 궁을 포위하고 이완용에게 조인을 한 사실이 명백하므로 동 조약은 국가대표에 대해 강박을 가해 체결된 것이므로 무효이다.

둘째로, 동 조약의 서명권자인 이완용에게 순종이 부여한 ‘통치권 양여에 관한 조칙안’은 일본에 의해 날조된 것이고 또한 강박에 의해 서명된 것이므로 이는 무효이다. 따라서 무효인 전권위임장이 부여된 동 조약은 조약으로서 ‘불성립’이다. 조약의 불성립도 조약의 무효라 부르는 것이 통례이므로 동 조약은 통례에 따라 무효이다.

셋째로, 동 조약은 순종의 재가가 없으므로 무효이다. 동 조약은 양국황제의 재가를 받아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으나(제8조) 순종의 재가(칙유)와 관련해 이 재가를 비준서로 보든 비준서가 아닌 것으로 보든 친필 서명이 없고, 대한국새(大韓國璽)가 아니라 칙명지보어새(勅命之宝御璽)가 날인된 것이고 순종의 재가는 없는 것이므로 절차상 무효인 것이다. 정확하게는 동 조약은 불성립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순종이 동 조약을 재가할 황제의 지위에 있지 아니했으므로 동 조약은 무효이다. 일제는 헤이그밀사사건의 책임을 물어 1907년 7월 16일 고종황제의 양위를 강요했으며 7월 20일 경운궁 중화전에서 고종황제와 황태자(순종)가 모두 불참한 가운데 양위식을 거행했다. 따라서 고종의 강제퇴위와 순종의 즉위는 무효이므로 순종은 대한제국의 황제가 아니었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순종은 동 조약체결 당시 동 조약을 재가할 지위에 있지 아니했으므로 동 조약은 무효이다.

1910년 당시 외세의 각축 속에서 일본의 침략을 저지할 역량이 없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외적 사정은 슬프지만 숙명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고,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당시 ‘당초부터 무효’로 규정하는 것을 관철할 수 없었던 특수사정, 즉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수령해야 할 국가적 당위를 최우선 가치로 설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국민적 관용으로 용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10년 오늘의 한국은 1910년 당시의 한국도, 1965년 당시의 한국도 아니라 고도로 신장하여 세계로 웅비하는 선진한국이다. 일본 정부의 ‘1948년부터 무효’라는 주장을 그대로 용인하고 ‘한일지식인의 한일병합조약 무효선언’ 등 정치적 립서비스로 한일병합 100년을 넘기는 오늘의 한국 정부는 어떤 이유로도 이해되지 아니한다.

우리 정부 당국자는 1910년 당시의 매국노보다 더 비난받아 마땅한 ‘부작위 매국노’라 할 수 있다. ‘당초부터 무효’라는 해석의정서의 체결 또는 ‘한일기본관계조약’ 제2조의 ‘이미 무효’를 ‘당초부터 무효’로 개정하는 것은 당연한 민족적 과제이고 시대적 당위이다.

일본 또한 정부 당국자의 사죄하는 듯한 허위의 정치적 행태만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기본조약의 개정 또는 해석의정서의 체결로 잘못된 과거사를 명확히 정리하여 한일 양국의 새로운 미래의 창조를 위해 진정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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