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은진 기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한국 속담에 여자가 한 번 마음이 틀어져 미워하거나 원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칠 만큼 매섭고 독함을 이르는 한(恨)의 정서가 담긴 표현이다.

19일 막을 내린 창작오페라 <아랑>의 코끝을 맴도는 잔향이 뇌리를 스친다. 창작오페라이기에 여운이 더 강한 것은 아닐까.

지난 4일간 공연된 <아랑>은 ‘장화홍련전’의 근원이 되기도 한 경상남도 밀양지방 ‘아랑설화’를 모티브로 지난 2009년 2월 맘창작오페라 공모전 시놉시스를 1년간 다져 90분 버전으로 완성된 국가브랜드 창작오페라다.

결론적으로 창작오페라 <아랑>의 시도와 성과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서양오페라 형식에 한국적 질감을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잘 표현해 냈다.

좁은 공간에서 카타르시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미장센 역시 탁월했다. 무대 좌우와 상하 그리고 관객석까지 적절하게 활용했다. 특히, 연못으로 연출된 무대 중앙 수조는 때때로 열리며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39인조 오케스트라와 국악 연주자 5명이 빚어내는 선율은 새로운 리듬으로 다가온다. 아리아와 코러스 배치도 조화롭다.

전통음악을 그대로 삽입하는 대신 중모리, 굿거리, 타령, 자진모리, 휘모리, 육채, 칠채, 엇모리 장단의 호흡과 리듬을 변용해 가져왔고 전통 타악기를 활용해 앙상블이 한국적이다.

우리말 호흡을 고려한 말 이음새 또한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이 돋보인다.

한을 품고 원혼이 된 아랑의 등장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감각적인 색체가 인상적이다. 음산한 조명과 흔들리는 대나무 숲 연출은 관객의 집중력을 상기시키며 극의 분위기를 원작과 의도에 맞게 잘 몰아간다.


“씻어 주세요. 씻어 주세요.”

삼년 가뭄, 삼년 흉년, 삼년 동안 부임한 밀양 부사 17명이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관아는 시신 수습에 바쁘다. 현미한 가문 탓에 중앙으로 진출하지 못한 이 부사가 밀양으로 자청해서 부임해 오고, 현명한 이 부사(테너 전병호)는 전직 부사 윤관의 딸 아랑 죽음과 그 억울함을 밝혀 그 원혼을 달랜다.

“아랑? 너는 누구인가? 무엇이 널 원혼으로 만들었나?
무엇을 원하느냐? 모습을 보여 다오.”

“나는 아랑이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영이요.”

“말해다오, 말해다오. 반드시 진실을 밝히리라.
너의 억울함을 풀어 줄 터이니 너의 원혼을 거두어 가라.”

이 대목에서 아랑이 세 개체로 등장한다. 한을 전하는 소리꾼(최수정)과 춤사위로 사연을 펼치는 아랑(옥지윤). 아랑의 혼을 불러들이는 무녀(소프라노 한예진). 세 사람이 모두 아랑을 연기하지만, 서로 다른 표현법으로 보는 이에게 다채로운 영감을 던지는 것은 물론이고 극의 긴장도를 높인다.

“오래된 관행 단단한 바위를 깰 수 있을까. 깨려고 할수록 더욱 더 두꺼워지는 벽.
진실은 묻히는가. 진실은 사라졌나. 감춰진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네(코러스(모스트보이시스)).”

아랑의 죽음을 추리하고 취조하면서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고 김 판서(바리톤 조병주)의 아들 정혼자 김유석(카운터테너 최경배)의 소행임이 드러나자 극은 절정에 달하고, 열려진 수조 연못에서 희롱과 폭행을 당하던 아랑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가사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 정확한 발음의 구사에 공을 들였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대사 중심의 극인 데다 음절 단위의 받침이 많은 우리말 대사를 오페라 가창으로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은 듯하다.

지난 6월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기념공원 등 이미 큰 무대를 거쳐 인정받아 4일간 90분 버전으로 한층 더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 창작오페라 <아랑>은 해외 오페라 시장 진출까지 겨냥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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