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지난 월요일 아파트 현관 앞에 배달된 아침 신문을 줍다가 깜짝 놀랐다. 신문 뭉치가 거의 웬만한 월간잡지만 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 신문을 살펴보다 또 놀랐다. 신문 가운데 삽입된 광고 전단지로 인해 신문이 두툼했는데 이 전단지는 거의 모두 학원 등 사교육 관련 내용이었다.

광고 전단지를 대충 훑어 보았다.
‘XXX외국어 학원이 드리는 열쇠로 성공의 문을 활짝 여세요, 중고등부 겨울방학 특강’ ‘프리미엄 교육특집, 자기주도학습 전문’ ‘예비고 입시설명회, 대치동 강사 대거 초빙 XX학원’ ‘XXX어학원 겨울방학 특강안내’ ‘XXX미술학원 미대입시 설명회’ ‘수학은 생각하는 수학, XXX학원’

전단지가 무려 50종이 넘었다. 전단지는 대개가 겨울방학 시즌을 겨냥한 것들이었다. 이번 대학입시에서 수시전형으로 합격한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나열한 것도 있었고 지난해 고교 입시에서 유명 특목고에 진학시킨 실적을 대대적으로 게재한 것도 있었다. 형형색색의 엄청난 전단지는 우리 교육계의 사교육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난 평소에도 우리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았지만 올해엔 특히나 교육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둘째 아이가 고3이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는 아이를 위해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지만 도대체가 대학입시 체제에 대해 너무도 아는 게 없어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친구들 모임에 가도 대화의 말미는 대개 자녀들 입시문제로 화제가 모아졌다. 결론은 거의 이구동성으로 ‘대학입시제도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려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필자처럼 예비고사, 본고사 등 단순명쾌한 입시제도를 거쳤던 세대에겐 요즘 대학입시는 연립방정식이나 고난도 미로학습처럼 보여졌다.

수시, 정시입시 정도는 무슨 제도인지 알 수 있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도무지 대처할 수가 없었다. 대학마다 완전히 판이한 전형방식은 차치하더라도 백분율, 표준점수 등의 용어는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우리집의 경우 다행히 교직에 있는 아내가 학교를 찾아다니고 같은 수험생 학부모 입장인 여고동창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수시모집의 관문을 돌파했다. 수시모집에만 10곳에 원서를 내서 얻은 전과였다. 갖춰야 할 서류도 만만치 않았지만 전형료도 장난이 아니었다. 대개가 10만 원 선이어서 전형료로만 100여만 원이 들어갔다.

수능성적이 나온 이후엔 아이가 받은 점수로 어느 대학에 지원해야만 합격이 가능한지를 가늠하는 치열한 정보전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이 정보전에는 단연 특목고와 대형 사설학원이 우세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존재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유명 대형학원 등은 수능이 끝나면 즉시 자체 채점자료를 토대로 예상합격선을 산정해 누리집에 띄운다. 그러면 학생들이 일시에 이 코너로 들어가 자기 성적을 기입하면 얼추 진학가능 대학이 제시된다.

특히 적중률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누리집일수록 학생들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그 누리집은 더 많은 자료가 모이게 마련이고 그 결과 적중률도 올라간다. 이러니 시골의 군소도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 과거의 실적을 토대로 적확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대도시 특목고와는 기본적으로 정보전에서 적수가 되지 않는다. 대충 수시합격자 발표가 끝난 후 아이에게 주변의 친구들의 합격여부를 물었더니 “성적도 중요하지만 정보를 잘 활용한 친구들이 더 결과가 좋았던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경쟁이 치열한 중간 점수대에서는 로또식의 행운이 좌우한다는 것이다. 같은 점수대인데 누구는 합격하고 누구는 떨어지는 현실 앞에서 학생들은 현 입시제도의 정당성을 수긍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 주 연말 송년모임에서 들은 얘기, ‘대학입시는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이 결정한다’는 말은 진정 이 시대의 교육문제의 정곡을 찌른 슬픈 패러디다. 사교육추방과 난마처럼 복잡한 입시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점을 학부모로서 절실하게 깨달은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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