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호 소설가

불행하게도 나는 자식이 없다. 식구라고는 오직 아내뿐이다. 아니 ‘동이’라는 녀석이 하나 더 있기는 하다.

비만 오면 아내는 동이한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비오는 거 보이지? 너, 우산 들 수 있어, 없어? 오늘은 밖에 못 나가는 거다. 알았지?” 그러면 매일 아내를 따라 산책을 즐기던 동이 녀석도 기특하게 잘 알아들었다. 녀석은 비가 와 밖에 못 나갈 때만 나에게로 왔다. 와서는 내 무릎에 앉아 발가락을 핥곤 했다. 평소에는 노상 아내의 뒤만 따라다녔다.

그런 아내가 어느 비오는 날 동이를 데리고 나가더니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아내는 왜 그날 산책을 나갔을까. 비가 오는데.

#나이 갓 마흔에 나는 벌써 은퇴를 했다. 아직 한창 나이에 사업을 그만둔 것은, 물론 먹고살 만한 돈은 이미 벌어놓기도 했거니와, 악화된 건강 때문이었다. 의사는 당장 모든 일에서 손 떼고 편히 쉬지 않으면 나의 간이 더욱 화를 내 빨리 굳어질 거라고 했다. 집을 신도시 외곽의 공기 좋은 곳으로 옮긴 것도 다 건강 때문이었다.

아내가 푸들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한 것은 내가 집에 들어앉고부터였다. 이 푸들에게 아내는 ‘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같을 동(同), 둘 이(二). 둘은 같다, 곧 한몸이란 뜻이 되겠는데, 간절히 자식을 바랐건만 뜻을 이루지 못한 아내의 염원이 어느 날 갑자기 이 녀석에게 그대로 옮겨온 듯한 이름이었다. 또는 뭔가 연인을 연상케 하는 느낌을 풍기는 의미 같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아내는 매일 동이와 산책을 나갔다. 어떤 날은 오전 오후 두 차례씩 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비가 오면 아내는 녀석을 베란다로 데려가 비가 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는 집에서 머물렀다. 한데, 어느 비오는 날이었다. 안방에서 아내의 핸드폰 소리가 울리는 듯싶었다. 나는 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었고 동이는 모처럼 나의 무릎에 올라앉아 발가락을 핥고 있는 중이었다. 곧 아내가 녀석을 불렀다. 그러고는 잠시 뒤 녀석을 품에 안은 아내가 나오더니 산책을 나갔다 오겠다고 했다. 나는 창밖을 보며, 이렇게 비가 오는데, 하는 표정을 지었더니 아내가 가슴에 안은 동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잘 알 텐데 오늘따라 이 녀석이 보채네요.”

나는 뭔가 석연찮아하면서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렇게 나간 아내와 동이는 어느 모텔 앞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사고의 발단은 급히 무단행단을 하던 아내가 달려오던 트럭을 우산에 가려 미처 발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했다.

#아내를 잃은 뒤 속절없이 혼자가 된 나는 자주 망상에 시달렸다. 불면증도 심해져 온밤 내내 자반뒤집기를 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비만 오면 새싹이 돋아나듯 숨어 있던 의구심이 고개를 내밀며 그날의 그 불가해한 상황을 자꾸 돌이켜보게 만들었다.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리자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나는 급기야 무엇에 끌리듯 사고 현장을 찾아갔다. 아내가 쓰러졌던 곳은 비교적 차가 뜸한 4차선 도로였고, 길 맞은편에는 큰 모텔 몇 채가 연이어 늘어서 있었다. 나는 사방을 훑어보며 다시금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둘러 이 길을 건너려 했던 아내는 도대체 어디를 가려 한 것일까.

빗줄기가 갑자기 굵어지더니 무더기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곧 받치고 있던 우산이 무색해지며 아랫도리와 어깨가 젖어들었다. 나는 우선 비 피할 곳을 찾아야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모텔 건물 1층에 자리한 전통찻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찻집은 한산했다. 창가 쪽에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가 혼자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자리를 잡고 녹차를 시켰다. 마침 ‘비와 눈물’이란 곡이 낮은 톤의 가야금 연주로 흘러나왔다. 차를 반쯤 마셨을 때 푸들 한 마리를 품에 안은 여자가 소리 없이 들어오더니 창가 쪽 사내한테로 갔다.

“비오는 날은 나오기 곤란하다니까.” 짐짓 눈을 흘기며 머리의 빗물을 털어내는 여자를 보고 사내의 눈이 빛났다. “야, 젖으니까 더 섹시하네.”

그들의 이야기가 낮게 깔리는 가야금 리듬처럼 들려왔다. 나는 도둑고양이가 되어 귀를 쫑긋 세웠다.

“요즘 우리 그이, 비가 오면 가게에 안 나갈 때가 많아. 건축자재대리점이란 비가 오면 황이잖아. 오늘도 이놈 핑계 대고 간신히 나왔어. 자꾸 보채니까 안고서라도 콧구멍에 바깥바람 좀 쐬어주고 오겠다며 둘러대고서.”

“거봐. 내가 이 녀석 사준 게 잘한 거잖아. 매일 나올 수 있는 핑계거리로는 최고인데다가 또 누구의 분신이라 생각하며 항상 곁에 두고 지낼 수도 있으니까.”

순간 나는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렇다면 아내도?…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이건 내가 피하고 싶은 최악의 추리였다.갑자기 도리질을 해대는 내가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동이와 판박이처럼 생긴 녀석이 여자의 품에 안긴 채 저쪽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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