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한나라당이 민주당 등 야당의 반대속에도 불구하고 8일 국회에서 예산안과 각종 법안들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이제 단독처리라는 ‘날치기 통과’는 이명박 정부 들어 연례행사로 정착돼 버린 것 같다. 벌써 세 번째다. 그런데 올해의 경우에는 예년의 경우에 비해 한나라당의 전술과 기세가 남달랐다. 과거에는 그래도 야당과 협상하는 시늉이라도 했었는데 이번에는 거의 군사작전을 방불하는 기민한 처리술을 보여줬다.

올해에는 과거와 달리 계수조정소위조차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통과를 강행했다. 더구나 이번에는 단순히 새해 예산안만을 단독 통과시킨 게 아니라 그간 현안으로 걸려있던 민감한 문제법안까지도 끼워넣기식으로 함께 통과시켰다. 이왕 욕을 먹을 바엔 한꺼번에 먹는 게 낫다는 계산이었을까? 특히 이번에 통과된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친수구역특별법)’의 경우 ‘국가하천의 난개발 가능성’을 내세운 야당의 반대로 국토해양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다가 7일 한나라당이 국토해양위에 단독으로 기습상정하긴 했지만 법 내용에 대한 논의 과정은 전혀 없었다.

또한 ‘국군부대의 아랍에미리트 파견 동의안’은 원전수주 대가 파병논란이 끊이지 않아서 국방위원회에도 상정되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도 왜 여당이 국회의장의 직권상정과 질서유지권 발동이라는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날치기통과를 강행했을까?

여당의 무리수 뒤엔 당연히 이명박 대통령의 ‘예산안 조기처리’라는 의지가 존재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회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9일까지 반드시 예산안을 통과시켜줘야 한다"고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에게 주문했다. 박희태 국회의장과 김무성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이 주문을 명령으로 이해하고 작전을 폈을 것이다.

한나라당 강행처리의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거론되지만 난 이명박 대통령의 개인적 캐릭터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대통령은 대기업 전문경영인 출신이다. 지난번 대선에서도 ‘현대건설 CEO'출신이라는 샐러리맨신화를 업고 ‘경제대통령’이라는 구호에 크게 힙입어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전문분야가 건설업이다. 건설업은 제조업이나 정보통신업과는 성격이 판이하다. 건설업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공기단축이라고 한다. 공사기간을 가급적 단축해야만 원자재비용이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인건비 절감에는 공기단축 이상 좋은 방법이 없다.

실제로 그는 현대건설 중기사업소 과장시절 정주영 사장이 2년 5개월 만에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키는 것을 지켜보며 ‘속도전’의 중요성을 배웠다고 한다. 이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시절 성수대교를 2년 반만에 건설한데 이어 연천댐도 2년만에 세웠다. 서울시장 재임때는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계천사업을 임기내에 마무리했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한 속도전이었다. 하지만 속전속결에는 부실공사라는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성수대교는 붕괴하는 참사를 겪었고 연천댐도 붕괴를 거듭하다 결국 철거됐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미쇠고기협상을 전격적으로 해치웠다.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전에 타결지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설이 파다했다. 이번 한미FTA 추가 협상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요청을 대거 수용하는 형태로 매듭지었다. 둘다 전광석화같았다.

이제 이 대통령의 임기는 2년여 남았다. 재임 중 청계천 사업과 같은 가시적인 업적을 남기기 위해선 시간이 촉박하다. 이번에 4대강 사업예산을 무리하게 날치기처리한 것도 임기내 사업 준공이라는 속도전에 집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 나라의 경영은 건설업체가 아니다. 나라 살림은 무리하게 공기단축을 해서 이익을 크게 남기는 게 가장 큰 미덕인 건설업체처럼 꾸려가선 안된다. 앞뒤를 따져보고, 보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그늘진 곳도 살펴보는 한 집안의 가장처럼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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