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적상산사고본 등 96책 추가 확인
“北 존재할 실록 형태 추정 가능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최근 북한으로 반출됐다고 알려졌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4책 등 96책이 추가로 발견됐다. 역사를 글로 남겼던 선조들. 발견된 사고본은 선조들의 철저한 기록관리 정신을 다시 한번 증명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란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로부터 철종에 이르기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연월일 순서에 따라 편년체(編年體)로 기록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100년이라는 기간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472년간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데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인력이 필요했을까. 짐작기도 어려운 시간이다. 

조선왕조실록은 8명의 사관에 의해서 기록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관이 교대로 근무하고 24시간 임금의 주변을 지켰다. 큰 사건이나 임금이 하는 말 등 아주 사소한 것까지 빠짐없이 기록됐다.

사관들의 책임 의식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직속상관은 물론이고 임금의 명령에도 굽히지 않는 객관적인 기록을 남겼다. 대표적인 예화가 태종 이방원 이야기다. 평소 누구보다 말을 잘 타던 태종은 사냥을 하다가 떨어지고 말았다. 놀란 태종이 주위를 돌아보며 가장 먼저 한 말이 “이 일을 사관이 모르게 하라”라고 한다. 하지만 이 말까지 실록에는 고스란히 남게 됐다. 임금들은 최종본의 전 단계의 사초를 보길 원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볼 수 없었고 임금이 세상을 떠난 뒤에야 최종적인 기록이 정리됐다. 즉 객관성과 진실성을 갖춘 책이 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광해군일기 필사본) (출처:문화재청)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광해군일기 필사본) (출처:문화재청)

◆방대한 양의 실록, 철저한 관리 필요

방대한 양의 조선왕조실록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을 수 있던 것은 철저한 관리 때문이다.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던 조선왕조는 같은 내용의 실록을 더 만들어 여러 사고에 실록을 보관하도록 했다. 실록이 처음 만들어질 때는 조선 한양 춘추관과 충주에 보관됐다. 이후 전라도 전주와 경상도 성주에 새로운 사고를 짓도록 해 같은 내용의 실록을 보관했다. 하지만 전주를 제외한 나머지 세 곳은 화재와 전쟁으로 실록이 모두 소실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왕실은 전주의 것을 묘향산으로 옮기고, 같은 내용을 더 만들어 적상산, 태백산, 오대산에 분산 배치했다. 묘향산 사고의 실록은 강화도 마니산을 거쳐 마지막으로 강화도 정족산으로 옮겨 최종적으로는 태백산, 정족산, 적상산, 오대산에 보관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실록의 일부는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사라졌다.

◆새로 발견된 조선왕조실록 의미

그러다 최근 전라북도 무주 적상산사고에 보관돼 있던 조선왕조실록 적상산사고본 4책과 오대산사고본 1책, 정족산사고본의 누락본 7책, 봉모당본 6책, 낙질 및 산엽본 78책 등 조선왕조실록 96책이 추가로 확인됐다. 발견된 96책은 추가로 확인해 국보로 지정 예고하기로 했다.

그 중 적상산사고본은 지금까지 북한으로 반출된 것으로만 알려질 뿐 국내에는 없다고 전해왔다. 적상산사고본 실록(4책)은 국립중앙박물관(1책)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3책)에 나눠서 보관돼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조선 4대 사고인 정족산․오대산․적상산․태백산사고에 소장됐던 실록이 완질 또는 일부 형태로라도 국내에 다 전해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머지 적상산사고본 실록의 형태를 추정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