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1990년 9월 중국의 수도 베이징. 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으로 국제무대에 새로운 지평을 개척하던 중국은 1949년 공산당 정부의 수립 이후 처음으로 가장 규모가 큰 국제종합대회인 제11회 베이징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 신문기자였던 필자는 베이징은 역동적이고 매혹적인 도시였지만 아주 낙후된 모습에 깜짝 놀랐다.

베이징의 대로변 뒷골목에는 지저분하고 열악한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선족 동포의 안내로 우연히 방문한 한 중국인의 집은 방 한 칸에 여러 명의 식구들이 옹기종기 붙어 산 1960년대 우리네 ‘하꼬방’ 같았다. 나무를 엉기설키 엮은 판잣집은 가난하고 고단한 중국인들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아시아에서 기적적인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그들은 남조선이라 불렀다)을 일본에 못지않은 선진국으로 여기고 많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스포츠에선 달랐다.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인 중국은 스포츠 무대에선 아시아의 호랑이였다.

경기가 열리는 모든 스타디움과 체육관은 ‘짜유(加油, 기름을 더한다는 말로 영어의 ‘파이팅’과 같은 말)’를 외치는 중국인들의 함성으로 귀청을 찢는 것 같았다. 통제된 사회주의 체제와 경제적 어려움을 스포츠를 통해 발산하는 듯했다. 중국 스포츠의 위력은 무서웠다. 중국은 금 183개로 2위 한국(금 54개), 3위 일본(금 38개)을 크게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스포츠 강국의 위세를 보여주었다.

2010년 11월. 중국에서 열린 광저우아시안게임은 20년 전 베이징때와는 모든 것이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오늘날 20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과 산업화로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G2의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급격히 향상된 경제력은 개·폐회식과 국민들의 자신감 넘친 표정에서 읽을 수 있다.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개회식, ‘한류열풍’의 주역 비까지 초청해 3곡씩을 부르며 아시안인들의 화합 무대가 된 폐회식 등은 중국의 뻗어 나가는 힘을 잘 표현했다.

중국의 위력은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20년 전과 같이 종합 우승을 차지했지만 그 내용과 수준은 한국과 일본 등 경쟁국들과 크게 차이가 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ONE CHINA, ONE WORLD’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미국을 제치고 가장 많은 금메달을 차지한 세계 스포츠 최강국 중국에게 아시안게임은 어린애 손목 비틀기만큼 손쉬운 무대였다.

중국은 남자 우슈에서 대회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을 시발로 마지막 금인 여자배구까지 모든 종목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다.  금 199개를 획득해 한국(76개)과 일본(48개)을 월등히 앞서며 여유 있는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20년 만에 달라진 중국의 이런 모습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 걸까.

당초 한국 선수단의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 목표는 금메달 65개를 따내 지난 1998년 방콕대회부터 계속된 종합 2위를 지킨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본격적인 메달 레이스가 시작된 대회 이틀째 4개의 금메달을 수확하며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고, 이후 매일 금메달을 추가하며 당초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성적을 올려 대회를 마무리했다.

한국 선수단이 이번 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 76개는 역대 원정 아시안게임 최다 금메달이다. 한국의 전통적인 효자 종목인 사격 유도 양궁 볼링 골프는 이번에도 제 몫을 해줘 종합 2위를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중국땅에서 목표 이상의 성적을 거뒀지만 예전처럼 그냥 좋아만 하기에는 다소 불편한 느낌을 저버릴 수 없다. 중국의 무한독주에 뭔가 허탈하고 착잡한 기분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비단 필자만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닐 것이다.

최근 들어 천안함 사건에 이어 연평도 포격 사건을 감행한 북한의 무자비한 도발을 애써 두둔한 중국이기에 가까이하기에는 먼 이웃으로 느껴진다. 지난 20년 사이 ‘중공’에서 ‘중국’으로, ‘북경’이 ‘베이징’으로, ‘등소평’이 ‘딩샤오핑’으로 바뀌는 등 중국식대로 발음을 바꿀 정도로 중국에게 다가서며 이해하려 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때이다. 스포츠에서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무섭게 커진 중국에 대해 냉철함과 지혜를 갖고 우리들의 인식을 재구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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