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국유사 속 신라 건국 설화는 사실”
[단독] “삼국유사 속 신라 건국 설화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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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암 유적 (제공: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역사학자)ⓒ천지일보 2019.3.25
표암 유적 (제공: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역사학자)ⓒ천지일보 2019.3.25

이재준 전 위원 1세기 개국 주장
“박혁거세 추대된 북천 동산서
고대 중요 유적 무더기 발견”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기록된 이알평(李謁平)을 중심으로 한 신라 개국 설화. BC 57년 경주에 터를 잡은 육촌장들은 북천 언덕에서 자제들과 함께 모여 나라를 다스릴 왕을 추대한다.

이들이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것은 박혁거세였다. 이것이 유명한 고대 민주주의 기원인 화백제도(和白制度)의 시초였다. 삼국유사에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왕을 추대하는 이유가 다음과 같이 기록된다.

“우리들이 위로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는 까닭에 모두 방종하여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하니 어찌 덕있는 사람을 찾아 군주로 삼고 나라를 세워서 도읍을 두지 않겠는가.”

이들은 국호를 사로(斯盧)라고 하고 알영정에서 태어난 총명한 여자를 박혁거세의 아내로 삼게 한다. 왕비가 바로 알영부인이다. 박혁거세를 시조로 한 사로국은 후에 신라(新羅)라는 이름으로 국호를 바꿨으며 1천년을 지속하는 대국이 됐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한반도에 처음 한민족의 통합을 이룩하고 찬란한 신라문화를 이룩했다.

그런데 신라개국 기록은 역사학계에서 설화로 치부돼 믿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신라개국 상한을 내물왕대(356~402) 4세기로 규정하는 것이 통례였다. 설화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고고학적 유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육촌장이 모여 왕을 추대하고 국가의 중대사를 논했다는 북천 언덕(삼국유사에는 ‘東山’이라고 표기돼 있음)도 주목을 끌지 못했다. 

경주 표암 유적  석관묘 (제공: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역사학자)ⓒ천지일보 2019.3.25
경주 표암 유적 석관묘 (제공: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역사학자)ⓒ천지일보 2019.3.25

◆육촌 설화 뒷받침하는 석관묘

그런데 최근 역사학자(칼럼니스트)인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이 경주시 동천동에 소재한 동산과 소금 강산 일대를 답사하고 원삼국시기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숱한 고분군과 주변에서 찾아지는 토기 등을 발견해 문제 제기에 나섰다.

이 전 위원은 사적 제174호인 탈해왕릉 뒷산인 ‘동산’에서 소금강산 정상에 이르는 능선과 주변에서 자연석을 이용해 무덤을 만든 고대의 석관묘와 집자리 등 수십곳을 찾아 이 일대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 조사를 제기했다.

이 전 위원은 동산과 금강산은 표고가 170m를 넘지 않는 야산으로 2천년 전 원삼국기 사람들이 방어와 취락을 함께했을 적지이며 이 같은 사실을 석관묘의 잔해가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삼국유사에서 정확히 적시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일연선사(一然禪師)가 육촌의 수장격인 이알평(李謁平)이 세거했던 곳을 ‘지금의 동산’이라고 기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특히 소금강산은 고산자 김정호의 여지도서에는 금강산(金剛山)으로 기록되며 이는 우리말로 ‘쇠벼리산’으로 고대 철기가 만들어진 곳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금강산에 내려왔다는 육촌가운데 금산가 리촌의 배씨와 명활산 고야촌의 촌장 호진(습피부 설씨)집단도 철과 인연이 있음을 암시한다고 해석했다. 신라 4대 왕인 탈해왕도 외부에서 이주한 철기 장인으로 해석되고 있으며 이곳에 자리 잡은 호공(이씨 표암의 후손)과의 연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위원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알평이 내려왔다는 표암(瓢岩)은 표주박처럼 생긴데서 유래한 것으로 암반군 가운데 표주박 선각화가 있으며 반듯하고 큰 암반에 혈(穴)을 판 유물이 있다는 것도 고대 기록을 뒷받침할 수 있는 민속학적 자료라고 말했다.

중국 신강성 이오현 사량자촌에서 발굴된 석관묘.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에서 찾아진 고분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공: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역사학자)ⓒ천지일보 2019.3.25
중국 신강성 이오현 사량자촌에서 발굴된 석관묘.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에서 찾아진 고분과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제공: 이재준 전 충청북도문화재위원, 역사학자)ⓒ천지일보 2019.3.25

◆중국 신강지역 등지 무덤과 동일

이 전 위원이 확인한 석관묘는 중국 신강지역 등지에서 찾아진 같은 형태의 원삼국시기의 무덤으로 자연석으로 관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한 묘제이다. 이 위원은 능선 여러 곳에서 흩어진 많은 석재와 흩어진 고대 토기 등으로 미루어 엄청난 숫자의 고분이 찾아 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탈해왕릉 뒷산인 동산과 경주 표암과, 금강산록에 산재한 고분군을 발굴 조사해 신라개국사의 중심인 표암 일대를 사적으로 지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경주시에서는 여러 곳에서 신라개국설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유적 유물이 발견된바 있다.

지난 1981년 조양동에서는 한대(漢代)의 동경과 철기유물이 발견됐으며 경주시 사라동에서도 청동기 유물과 철기들이 무더기로 나온바 있다. 초기 신라의 국호와 연 관이 있는 사라동은 소금강산과 멀지 않은 곳이다.

한편 이 전 위원은 1980년대 대전에서 해방 후 최대 고고학적 성과라고 평가된 둔산 선사유적을 찾아 화제를 모은바 있으며, 춘천 매국(貊國)의 고지인 우두성과 율문리 토성, 청주 신봉동 고분군, 청원 오창 선사유적을 위시 전국에서 많은 고대 유적을 찾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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