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현 문학박사

▲ 성주현 문학박사ⓒ천지일보(뉴스천지)
일제의 종교정책은 조선을 강점한 이후 식민지조선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강점 직후 ‘총독부가 조선에 있는 종교에 관하여 상세하게 조사하고 장차 이를 제한하기 위해 법령을 제정한다’는 떠도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으니까.

이에 대해 조선총독부는 ‘신교의 자유를 보장할 뿐 아니라 종교제한은 허설에 불과하다’고 변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조선의 종교에 대해 조사할 용의가 있음을 아울러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총독부는 강점 이듬해인 1911년 ‘종교선포규칙’을 곧 발표할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일제가 일본의 종교정책을 식민지조선에도 그대로 적용시키려는 의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란 오직 국가의 중심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국가로 귀일시켜 국가에 무조건적 복종과 국가만을 의존하는 태도를 기르는 국가공인의 국민교도단체라는 인식’을 조선에까지 확대 적용시키고자 한 것이었다. 결국 종교를 정치와 교육으로부터 분리하고 국가에서 통제하려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의 종교선포규칙은 더 나아가 종교를 ‘공인종교’와 ‘유사종교’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였다.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 따르면, 종교의 본지는 ‘국가의 법률명령을 극존극봉(極尊極奉)’으로 표현하였고 교세가 큰 종교라 하여도 크고 작은 교파가 문란하고 계통이 없으면 유해무익에 불과함으로 통제하는 법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는 일제가 신도(神道)를 비롯하여 기독교, 불교, 천주교 등 공인된 종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규제할 수 있음을 뜻하고 있다. 이러한 규제방침은 다음에서도 확인해 볼 수 있다.

종교통제에 관해서는 이미 일본인의 종교선포 수속절차를 정한 바 있다. 하지만 조선인 및 외국인의 종교에 관한 것은 하등의 법규도 없어서 그로 인해 포교소가 함부로 설치되고 있어 그 폐해가 크다. 특히 천도교 시천교 대동교 태극교 원종종무원 공자교 대종교 대성종교 등의 종교가 있는데, 그 종류가 너무 많고 잡다할 뿐만 아니라 그 움직임도 정치와 종교를 서로 혼돈하여 순연히 종교라 인정하기 어려운 것이 많아 그 취체가 불가피하다.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식민지조선의 종교정책은 1912년 총독부 내무부에서 ‘신교의 자유를 방해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 현재 각 종교에 관하여 통제가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종교 제령을 심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더욱이 식민지조선에서 종교정책이 천황제 국가의 국체에 대한 복종과 헌신을 유도할 수 있는 교화를 담당할 국가기구화가 주요방침이라면, 사회 안정을 위하고 행정기구에 의한 종교단체의 통제가 필요하였다.

특히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식민지조선의 사회 안정에 대한 필요를 더욱 강화시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일제의 종교정책은 종교와 유사종교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공인종교에 대해서는 천황제 국가이념을 부정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의 신교의 자유를, 그리고 유사종교에 대해서는 통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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