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고유명절인 설날을 5일 앞둔 지난 30일 인천 연수구 옥련시장 내 한산한 마트.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고유명절인 설날을 5일 앞둔 지난 30일 인천 연수구 옥련시장 내 한산한 마트. ⓒ천지일보 2019.2.1

구경하는 손님만 북적북적
설 대목, 잘 되는 곳만 잘돼

[천지일보=이영지·이미애·전대웅·김미정·이성애 기자] 우리나라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을 맞아 본지는 전국 전통시장을 찾았다. 설을 앞두고 시장의 분위기와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경기 체감 온도, 시장 상인들의 반응을 살펴봤다.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명절이 다가오지만 별로 기쁘지 않아요. 주머니 사정도 예전 같지 않아 세뱃돈도 걱정입니다. 그래도 황금돼지해라고 하니까 살다 보면 분명 좋은 일도 있겠죠. 새해니까 희망은 품어야죠.”

전남 나주목사고을시장을 찾은 지난 29일 시장 상인들과 시민들은 불경기에 어려움을 호소하며 그래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있었다. 명절을 앞두고 시장 분위기는 평소보다 밝았다. 두부가게, 채소가게 할 것 없이 점포의 손님은 눈대중으로 봐도 평소보다 1/2은 늘었다. 떡집, 어물전 등을 파는 곳에도 손님들이 북적였다. 

동태를 팔고 있던 김종희(40대, 여, 나주시 송월동)씨는 “1년 중 가장 바쁘다. 특히 제사상 차림에 쓸 생선포(명태포)가 가장 잘 팔린다”며 분주했다. 곶감·대추·밤 등을 팔던 김희자(80대, 나주시 금천면)씨도 “오늘 같은 날은 돈을 벌어야 정상인데 경기가 안 좋아 별로 못 벌었다”며 “그래도 정부를 한 번 더 믿어보려한다. 경제가 좋아질 거라 믿고 자식들 대학 졸업할 때까진 장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연세 지긋한 노령층이 눈에 많이 띄었다. 김말순(80대, 나주시 노안면)씨는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전통시장이 좋다. 가격도 싸고 덤도 많이 주니그렇다. 하지만 너무 무거우면 못 가져가니 많이는 못 산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요즘은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도 있었다. 칼을 팔고 갈아주는 김종남(70대, 나주시 금남동)씨는 “아침부터 계속 이러고 있는데 몇 개를 갈았는지 모르겠다. 대기 중인 사람이 아직도 많다”며 손님들을 가리켰다.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 말바우 전통시장.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 광주=이미애 기자] 광주 말바우 전통시장. ⓒ천지일보 2019.2.1

활기가 넘치는 시장 분위기 뒤에는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상인들도 적지 않았다. 
수년째 이동식 커피를 판매하고 있는 김정자(60대, 나주시 공산면)씨는 “평소보다 매출이 적다. 상인들이나 손님들이나 다들 바빠서 커피를 마실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직접 숯불에 김을 구워 판매하던 김남훈(60대, 나주시 공산면)씨도 “평소에 자주 먹어서인지 김이 잘 팔리지 않는다”고 했다. 

뻥튀기를 판매하던 박성민(50대, 나주시 공산면)씨는 “4일장(2월 4일)은 설 전날이라 손님이 없고, 오늘이 가장 바쁜 날이다. 오전에 손님이 너무 많아 여러 번을 튀겼다”고 말했다.

다음날 찾은 목포 전통시장의 구 청호시장 상인들도 설을 앞두고 물건을 진열하느라 쉴틈없이 분주했다. 

최순희(65, 여)씨는 “연세 드신 분들이 많이 오시는데 구경만 하고 간다. 경기가 나쁘니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기저기서 물건 좋으니 보고 가라는 소리가 생동감은 있었지만 물건을 사는 사람보단 물건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는 모습이 더 눈에 띄었다. 

상인 김모씨는 “작년보다 장사가 많이 안된다. 경기가 안 좋아 손님들이 주머니를 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광주광역시 말바우시장의 상인들도 대부분 울상이었다. 사람은 많았지만, 막상 물건을 사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제사용품을 사러 온 이순호(69, 남, 북구 두암동)씨는 “말바우시장은 전통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경기가 워낙 안 좋아서인지 물건 사는 데는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유과를 직접 만들어 파는 고창민(21)씨는 “할머니가 손수 만든 유과인데 2시간 동안 하나도 못 팔았다”고 푸념했다. 고씨의 어머니도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고 했다. 

반면 28년 동안 조기를 판매하는 김영순씨의 가게는 호황을 누렸다. 
조기를 사던 정해영(58, 광주 북구 문흥동)씨는 “오랫동안 장사해서 단골이 많은 것 같다”며 “해마다 여기서 조기를 사는 데 품질도 좋고 맛도 있어서 애용한 지 수년 됐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한산한 옥련재래시장. ⓒ천지일보 2019.2.1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한산한 옥련재래시장. ⓒ천지일보 2019.2.1

인천 연수구 독배로에 있는 옥련시장 입구는 목청 돋우는 소리는 들렸으나 생각보다 한산했다. 

11년 차 가게를 운영한다는 김용대(가명, 50대, 남)씨는 “설날이 코앞인데 손님이 전혀 없다”며 “경기도 안 좋지만, 매출이 작년보다 30% 이상 줄었다”고 했다. 이어 “고품질 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 걸고 있지만 인건비보다 물가를 잡아야 경제가 살아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직장생활을 접고 생선가게를 운영 중인 이범석(41, 남)씨도 “지난해보다 손님이 많이 줄었다”며 “단골이라도 유지하려고 착한 가격과 신선도를 철칙으로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주말에는 손님이 몰릴 것이라 예상하고 기대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차례상 준비를 위해 장을 보러 온 김정희(46, 여, 인천 송도)씨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명절 준비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주문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낸다”고 말했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손정훈(39, 남)씨는 “보시다시피 손님이 없다. 전통시장으로 손님을 끌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전통시장을 찾는 손님 중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 시장을 찾은 소정미(43, 여, 수원시 호매동)씨는 “신선한 제품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가격 흥정도 하고 덤도 있어 좋다”며 “마트보다 30%가량 저렴해 전통시장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충환 못골시장 상인연합회 회장은 “못골시장은 대형마트와 싸우기보다 5000여명의 상인이 뭉쳐 새로운 것을 만들자는 제안에 상인들이 동의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물건이 회전되니 값도 저렴하고 손님들도 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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