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나는 내 영역을 침범당한 걸 생각하니 불쾌했다. 동물의 세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빼앗긴다는 것은 곧 패배였다.

언제부터인지 우철(雨喆)이 내 아내 잠자리 옆을 어처구니없게도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와 나의 동침은 꿈도 꿀 수 없게 되었다. 항상 날카로운 무기를 지니고 있는 녀석이 나는 두렵기도 했다.

나의 인내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내가 신경질적으로 다그치자 아내는 한 마디로 잘랐다. 녀석한테 보디가드 역할을 맡긴 일은 절대 없다고.

술 취한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우철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어두움 속에서 습관처럼 아내 곁으로 접근을 시도했다. 묵직한 아랫도리의 방사(放射)가 목적이었다. 순간이었다. 어두움 속에서도 번개처럼 달려드는 녀석에게 나는 보기 좋게 일격을 당하고 말았다.

그날 밤 식구들은 모두가 잠을 설쳤다. 공격당한 손 등의 상처 부위를 움켜쥐고 엄살까지 동원해 길길이 날뛰는 내 앞에서 우철은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았다. 나의 쾌락을 깡그리 날려 버린 녀석은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채 눈만 멀뚱거리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아내와의 동침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춥지? 일루 들어와.”

녀석을 이불 속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아내의 농밀한 말투마저 가뜩이나 부풀어 있는 내 심기를 비틀었다. 조신한 그녀가 애정이 절절히 묻어나는 그런 표현을 나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우철에 대한 나의 적대감은 시간 위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부부 사이에 갑자기 헤집고 들어온 녀석의 정체가 나는 궁금했다. 녀석은 아내와 어떤 관계일까? 행여 전생의 연인(戀人) 관계라도 되는 사인가? 아내와 전생의 연(緣)이 있어 왔다면? 나는 생각이 그곳까지 미치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녀석이 나의 여자관계를 싸늘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즈음 나는 미모의 여자를 아내 몰래 만나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시절 과 후배 명주였다. 그녀는 이혼녀로 혼자 살고 있었다. 명주와의 기억을 아슴푸레 거슬러 올라가던 나는 고양이와 맞닥뜨린 쥐처럼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명주와 결국 바람을 피워 버린 바로 그날 우철이 아내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우철이 그때 나타난 것을 우연한 일이라고만 할 수 없게 되었다.

아내가 우산을 받쳐 들고 시장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우철은 시장 입구에서부터 비를 흠뻑 맞고 아내 뒤를 졸졸 따라왔었다고 했다. 몸에 묻은 빗방울을 간간이 진저리치듯 털어 내며 아내가 멈추면 녀석이 서고, 걸음을 다시 옮기면 녀석도 뒤따라와 기어이 둘은 집 문턱을 함께 넘어선 모양이었다.

그날부터 새 식구가 된 길 잃은 요크셔테리어를 우철이라 불렀다. 비 우(雨). 밝을 철(喆). 굳이 나름대로 해석을 붙이면 비 오는 날 왔으니 밝게 살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나는 감당하기 힘겨운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종교와 무관하게 살아온 내 이력에 걸맞지 않게 우철과 아내의 전생을 믿을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명주와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리할 것인지?

만약 명주와의 관계를 깨끗이 아퀴 짓고 속죄의 자세로 아내 곁에 돌아간다면, 전생의 연으로 아내를 지키기 위해 온 우철이 갈 곳은 그럼 어디인가?

골똘한 생각으로 퇴근길 거리로 나선 나의 발걸음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명주의 아파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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