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연 한국트리즈 경영아카데미 원장

스스로 자신에게 “너 왜 사니?”라는 질문을 던지지 못하는 사람은 인문학을 별개의 세상으로 본다. “인문학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전공을 선택한 나는 사실 평생 동안 인문학 공부 같은 걸 왜 해야 하는 건지 몰랐다”는 어떤 사람의 고백이 눈길을 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아니, 인문학과 이 세상에 무관한 전공이 있을까? 어찌하여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하고 말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일까? 학교 다닐 때 학교에서 독서도 권장하고 스스로 독후감 숙제도 하였을 텐데 말이다. 이 경우는 어렸을 때 배운 것을 망각하고 대학교에 와서 전공이라는 덫에 걸려 과거의 행적을 잊은 게 아닌가 싶다.

최근 성인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트리즈(TRIZ) 특강을 자주 하는데 창의적인 사고는 인문학에서 나옴을 매번 강조하곤 한다. 나는 융합이 강조되는 이 시대에 창의적으로 되려면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유한다. 한편 융합을 위한 움직임으로 소위 기술경영(MOT)이라고 하여 많은 대학교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대학원 과정을 개설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MOT에서 강조하는 게 기술과 경영의 접목이지만 경영은 인문학이 기반이 되어야 함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MOT를 기술 관점에서 보는 시각은 바람직하지 않다. 소위 공학을 전공하였다는 모 대학교의 MOT 담당 교수는 인문학의 철학이 부족해서인지 MOT의 목적이 돈 버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MOT의 목적은 세상을 이롭게 함에 있다. 그래서, MOT에서 중요한 대목이 도덕과 윤리의식이다. 잘못된 MOT 프로그램으로는 기술을 제대로 경영할 수 없다. 통섭과 융합은 인문학이 책임지는 시대에서 MOT 프로그램의 변화가 요구된다. 자식이 성공하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합쳐져야 한다는 시중의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주입식 교육과 사지선다형 문제지로 이루어진 교육 현장 속에서 학생들의 꿈과 상상력은 매우 형식적이다.

트리즈의 평형추 원리처럼 세상이란 균형이 잡힐 때 행복한 그 무엇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실력도 중요하나 더 중요한 도덕과 배려의 힘을 키워야 하는데 그 방안이 소위 문학(文學), 사학(史學), 철학(哲學), 줄여서 문사철(文史哲) 교육이라고 이홍규 교수는 강조한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몇 년 전에 쓴 <Public Philosophy>라는 책이 한국에도 나온 모양이다. 도덕이나 정의는 이벤트가 아니다. 생활이어야 한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문학,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는 역사, 모호한 현실을 구체화시켜 주는 개념 분석과 논리의 철학, 그렇기에 문사철에는 상상력과 포용력과 판단력이 있다. 이를 통해 윤리의식을 가꾸고 사회에서의 조화와 소통의 위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기 위하여 무엇이 어떻게 변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하였더니 여러 네티즌들이 답을 보내왔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되돌려보면 꼭 한 가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인성’의 부재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초·중·고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교육을 거치면서 <맹자> <논어> <대학> 등 사서오경이 교육과정에 포함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나라를 이끌어 가는 그룹에 있어서 공무원 제도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채용부터 관리감독까지 나라를 이끌어가는 공무원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국민교육헌장처럼 살면 됩니다.” “정신교육 강화 정책이 필요합니다!”

MOT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대목은 상상력의 실현이다. 1+1=2라는 수식으로 기술을 개발하면 경쟁력이 없다. 1+1=무한대라는 사고로 기술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경제논리와 실용적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경제적 부와 세상에서의 성공과 내 삶에 효용이 있는 것만을 강조하는 세상인 것이다. 그 와중에 문사철 즉, 문학(文), 역사(史), 철학(哲)은 뒤켠으로 밀려나 있다. 왕따를 당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문사철에 기반을 두지 않은 경제적 부, 높은 지위와 명예는 한순간 허물어질 수 있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라고 이요한 목원대 총장은 강조한다. 권석만 씨도 ‘사람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어떤 학문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이해, 다시 말해 등 인문학에 대한 이해 없이 배운 경영학 또는 기술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영자가 되려면 문사철에 대한 깊이 있는 소양을 갖춰야 한다. 전공과 상관없이 문사철은 물론 음악, 미술 등 예술을 공부할 수 있다. 강력한 창의력은 다양한 학문의 섭렵에서 나온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콘텐츠를 채울 스토리와 상상력을 제공해 주는 것도 문사철이다.

홍익대 진형준 교수는 ‘상상력 혁명’에서 ‘나는 상상한다, 꿈꾼다, 뒤집는다, 연결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이야기를 만든다, 체험하고 사랑한다, 미래를 예견한다. 고로 나는 창조한다’는 8가지 명제를 창의적 발상을 낳게 한바탕에 공통되는 원칙으로 제시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데 마법은 필요 없다. 우리는 이미 이보다 더 나은 상상력이라는 힘을 가졌다’고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은 말했지만 상상력은 연결하는 힘이며 연결하려면 아는 게 있어야 하고 자원을 활용하여야 함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사람 사이의 여백과 관계를 만들어 주는 것, 즉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인문학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에 동네 도서관에 파묻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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