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와 함영훈 작가가 함께 떠나는 스포츠 in 열정 ①]

▲ 광저우아시안게임 출정에 앞서 파주NFC에서 홍명보 감독을 만나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까지 그의 축구인생을 들어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 일본 선수들의 정신적 지주까지 된 J리그의 생활

K리그에서도 늘 베스트11에 뽑히면서 세계 올스타에도 여러 차례 선정되는 등 최고의 활약을 했던 홍 감독은 1997년 포항 스틸러스에서의 6년간 생활을 정리하고 일본 J리그 벨마레 히라쓰카로 이적한다.

J리그 시절에 대해 홍 감독은 “어렸을 때부터 계속 키워오던 일본의 감정이 남아 있어 매 경기가 ‘한일전’이라고 느껴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면서 “나중에는 힘을 합쳐서 상대를 이기기 위한 동료들이라고 생각한 뒤부터 마음이 편해졌고, 감정도 사그라졌다”고 한다.

이후 가시와 레이솔로 팀을 옮겼고, 아시아클럽 챔피언십에선 외국인으로선 이례적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이끌기도 했다.

홍 감독이 가장 기억나는 순간은 팀이 딱 한 번 우승했던 결승전을 꼽았다. 4강전에서 옐로카드를 받아 결승전에 뛰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감독이 벤치 옆에 자신을 서 있으라고 주문했다는 것.

“원래 경기에 뛰지 못하는 선수는 경기장에 안 온다. 그만큼 내가 외국선수이지만 선수들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라며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정말 나를 존중해주고 나에 대해 존경심을 가진 장면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일본 NHK TV도 내 모습을 계속 잡았다고 하더라”며 뿌듯해했다.

J리그 생활을 하는 중 일본 한 언론이 홍 감독에게 ‘일본축구를 위해 더 힘써줄 생각은 없냐’는 식의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이에 홍 감독은 “나의 영혼은 항상 한국에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홍 감독은 “내가 가장 열정적으로 팀을 위해 뛴 것은 일본팀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난 한국인이기 때문에 이같이 대답했었던 것”이라며 설명했다. 이처럼 홍 감독은 조국 대한민국을 국가대표로 뛰었던 만큼 끔찍이도 사랑했던 것이다.

나중에는 일본에서 홍 감독은 좀처럼 보기 힘든 상반신을 벗은 모습을 한 잡지 표지에 과감히 공개하기도 해 화제가 됐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홍 감독은 “자서전을 내서 일본에 가게 됐는데 일본 측에서 원하는 게 이런 것이었다”며 살짝 해명하기도 했다.

◆ 4강 주역의 중심에 선 영광의 2002년 월드컵

▲ 홍명보 감독 ⓒ천지일보(뉴스천지)
세 번째로 출전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대회 기간 도중 차범근 감독이 경질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하는 등 월드컵 16강 좌절을 번번이 겪었던 홍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 와서야 3전 4기만에 꿈을 이루고 만다.

당시 월드컵을 앞두고 홍 감독은 부상을 쉽게 당하지 않는 선수였으나 부상을 입어 월드컵 출전이 불투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료에 전념한 결과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주장을 맡아 4강 신화의 주역이 된다.

“월드컵에서 승리해 본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이겨야 하는지 방법을 몰라 마음속으로는 굉장히 불안했지만 주장으로서 이런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고 팀을 이끌었다”며 “다행히 첫 경기에서 첫 승을 거뒀고, 2002년 월드컵이 내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특히 홍 감독은 스페인과의 8강전 마지막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키고 경기 중 거의 처음으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다. 당시 느낌에 대해 “솔직히 차고 싶지 않을 만큼 굉장히 부담이 많이 됐지만, 성공시키는 순간 ‘아 이 순간이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나 기뻤다”고 설명했다.

4강에 진출함으로써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월드컵 우승까지도 가능해지자 희망을 품었지만 독일에게 져 꿈이 깨졌던 그는 그래도 아시아인 최초로 브론즈볼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내가 잘해서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선수들과 국민들을 대신해서 받았다고 생각한다”는 당시의 소감을 밝혔다.

▲ 2002년 한일월드컵 8강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로 나서 골을 성공시킨 뒤 환하게 웃었던 홍명보 감독

◆ 남편·아빠 홍명보는

가장으로서 홍 감독의 모습은 어떠할까. 홍 감독은 스스로 자신이 무뚝뚝한 성격임을 인정하고 선수 시절엔 아내에게 희생을 많이 강요했다고 한다. 은퇴를 하고 사회생활도 하다 보니 자신이 남편으로서 잘 못한 것임을 깨닫게 됐다는 것. 그래서 지금은 아내에게 애정표현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애교 떠는 홍 감독의 모습이 전혀 상상이 가질 않는다.

“두 아들에게도 나름대로 자상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조금 귀찮아하는 것 같다”며 피식 웃었다.

◆ 더 달려야 할 미래

▲ 함영훈 작가와 홍명보 감독 ⓒ천지일보(뉴스천지)
홍 감독은 “나보다도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었겠지만, 나는 주변 사람들이 운동할 수 있는 몸이 아니라고 할 정도로 나름대로 신체적인 콤플렉스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끝까지 충성스럽게 젊은 시절을 마감했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라며 자신의 축구인생은 ‘인내의 결실’이라고 정리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은 20년 만에 그가 처음으로 운동장이 아닌 관중석에서 본 대회였다. 감회가 새로웠다고 말하는 홍 감독은 이제 아시안게임과 런던올림픽의 대표팀을 이끌 지도자가 됐다.

마지막으로 그는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선수들은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모든 과정이 중요하고 이번 아시안게임이 아주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향해서도 열심히 노력하겠다. 많은 성원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 천지일보를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홍명보 감독의 사인 ⓒ천지일보(뉴스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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