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검찰이 여야 현역의원 11명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정치권을 정조준하면서 여의도에 매서운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의 입법로비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압수수색에 이어 국회 정무위와 농림수산식품위에 대한 `후원금 쪼개기 식' 로비 의혹 수사, 한화.태광.C&그룹 등의 비자금 의혹 수사도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어 정치권은 초긴장 상태로 빠져드는 분위기다.

여야 의원에 대한 초유의 동시 압수수색에 대해 한나라당은 애써 언급을 자제하면서도 그 파장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고 있으며, 민주당은 `국회 유린.협박'으로 규정하면서 당력을 총동원해 맞서겠다는 각오다.

◇한나라당 = 검찰의 전격 압수수색으로 `딜레마'에 처한 형국이다.

집권여당으로서 야당처럼 검찰을 향한 비난의 포문을 열 수도 없고, 국민적 시선을 의식해 보호막을 칠 수도 없는 가운데 야당의 대대적 공세도 막아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김무성 원내대표가 "검찰이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고, 안형환 대변인이 "과잉수사를 한다면 동의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논평하며 `예의주시'의 신중한 입장을 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여권으로서는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를 앞두고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는 점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여야간, 검찰과 정치권간 대결하는 양상이 부각되면서 '국가적 대사'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핵심관계자는 7일 "청와대는 `G20 이후에 일을 벌리라'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는 청와대와의 교감없이 검찰이 스스로 나선 것으로 안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내년도 예산안 및 쟁점 법안 심의의 출발선에서 정국이 얼어붙게 된 점도 부담이다. 한 원내관계자는 "현 상황에서는 야당 강경파의 입지가 강화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다만 한편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한 당내 불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어 언제까지 절제된 입장을 유지할지 주목된다. 후원금 제도 맹점에 대한 검찰의 몰이해, 정치인에 대한 섣부른 피의사실 공표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 출신 한 중진 의원은 "검찰의 과잉수사 아니냐"고 말했고, 한 핵심 당직자는 "정치권 길들이기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나아가 한 소장파 의원은 "청와대와 교감하지 않고 이런 일이 발생했겠느냐"며 "이번 압수수색 건은 정치 자체를 짓누르는 것으로, 정국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의원은 "검찰이 대포폰인지 차명폰인지를 제공한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서는 서면조사, 윗선 개입의 단서를 인멸해놓고, 국회의원에 대해 이같이 수사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당 = 이번 사안을 초유의 `국회 말살.유린' 사태로 규정, 검찰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현 사태를 국회의원의 정당한 입법활동을 침해한 검찰의 과잉수사로 규정하고 총력대응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난 5일 곧바로 조배숙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검찰의 국회탄압 대책위'를 구성한데 이어 7일 긴급 최고위원회의와 의총을 잇따라 소집하는 등 비상체제를 가동하며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어 8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5당 원내대표 회담을 갖는 한편 야권 공동으로 `검찰의 국회말살'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등 야권 공조도 강화할 계획이다.

민주당은 특히 이번 수사가 `대포폰 논란'과 자당 소속 강기정 의원이 제기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관련 의혹을 덮으려는 `물타기' 성격이 적지 않다는 판단에서 상임위 활동 등을 통해 압수수색 문제를 포함, 민간인 사찰 파문 부실수사 의혹 등 검찰 관련 문제 전반에 대한 쟁점화를 시도하기로 했다.

당 일각에서는 김준규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초강경 대응에는 C&그룹과 태광그룹 로비 의혹에서 청원경찰 입법로비 의혹에 이르는 검찰의 전방위적 정치인 관련 수사의 칼끝이 궁극적으로 야당을 향하고 있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
당 핵심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압수수색 대상에 여야가 고르게 분포돼 있지만 야당 의원들을 겨냥한 `구색 맞추기'라는 의심을 감출 수 없다"며 "검찰의 야당탄압, 표적수사 시도에 결연히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인 청와대와 관련된 대포폰 문제에 대해선 덮어주기식 수사를 하면서 국회에 대해선 까발리기식 수사를 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검찰개혁에도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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