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서울시 교육청은 2010년 11월 1일부터 모든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일선 교사들은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질서가 무너짐과 동시에 학생들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짐으로 해서 생겨날 각종 부작용들을 우려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학생들이 벌써부터 선생님에게 대드는 학교 장면과 수업 태도가 불량한 학생을 어쩌지 못하고 내버려 두는 선생님의 모습도 소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체벌이 바람직한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을 지도하려면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는 아마 우리가 어려서부터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매를 맞으면서 자라왔던 영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의 세대는 다르게 자라나기를 바란다. 학교에서의 체벌 금지와 함께 가정 내에서도 체벌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필자의 바람이다. 많은 분들은 ‘그러면 어떻게 아이를 훈육할 것인가’의 의문을 갖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대체 방법을 보급하고 교육하는 매뉴얼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사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대체 방법을 충분하게 교육 및 연습을 시킨 후에 체벌 금지를 시행했어야 옳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이제라도 훌륭한 대체 방법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체벌의 대체방법에는 타임아웃(잘못한 행동을 한 아이를 잠시 다른 공간에 혼자 있게 함으로써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하는 것), 각종 특권의 박탈, 불이익의 제공, 반성문 작성, 행동개선 기록표 작성 및 실천, 수업 박탈, 등교 제한, 봉사 활동, 개별 상담 등이 있다. 이와 같은 방법들은 예전보다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고, 또 당장의 효과도 미약하다. 그렇더라도 향후 체벌 금지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선생님들의 체득이 중요하다. 결국 아이들을 맡은 것은 선생님들이기 때문이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는 체벌의 후유증으로 병원을 방문하여 치료를 받은 아이들을 여러 번 경험했다. 가벼운 심리적 충격, 예컨대 실망, 억울함, 좌절, 분노 등의 감정을 잠시 겪은 다음에 회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일부 아이들의 경우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등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정에서의 체벌도 마찬가지다. 체벌을 받는 아이의 심리 상태를 살펴보자. 부모가 회초리를 들고 체벌하려고 할 때 아이의 일차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특히 예전에 심하게 체벌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들의 경우 두려움이 더 커질 수 있다. 부모가 화내고 무섭게 대하는 것과 실제 회초리가 안겨다 주는 신체적 고통 모두 아이로 하여금 두려움에 휩싸이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은 ‘분노’다. 부모가 나를 미워한다는 생각이 들 때 또는 약한 나를 힘으로 제압하려고 든다는 생각이 들 때 아이들은 종종 분노의 감정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슬픔’의 감정이다. 부모가 나를 칭찬하거나 상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매를 든다는 사실은 곧 자신이 부모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얻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부모의 사랑의 상실에 대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그 밖에 여러 상황에 따라서 억울함, 수치심, 반항심 등을 동반할 수 있다.

최근에는 부모가 처음부터 매를 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체벌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양육 정보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를 한두 마디 말로 지시하거나 나무란 다음에 아이가 달라지지 않으면, 부모는 점차 흥분하거나 화를 내게 된다. 예를 들어서 숙제하라는 지시, 씻으라는 지시, TV를 그만 보라는 지시, 게임하기를 멈추라는 지시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렇다. 부모는 결국 손으로 때리거나 매를 드는 등의 체벌을 가하게 된다. 이러한 경우 체벌은 더 이상 훈육이 아니라 부모의 감정적 흥분의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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