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6년 방콕아시안게임 야구 대만과의 경기에서 패배한 한국대표팀이 고개를 숙인 채 덕아웃으로 들어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 드림팀 구성해 방콕대회부터 8년 간 정상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던 야구는 아시안게임에서도 1994년 히로시마 대회부터 얼굴을 내밀었다.

야구로선 원년 대회인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순수 아마추어들로 구성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때 프로야구에서 이름을 날렸던 문동환 임선동 조성민 손민한 등 대학에이스들을 총출동시켰지만 일본에게 5-6으로 역전패 해 금메달을 내줬다.

아쉽게 금메달을 놓친 한국은 4년 뒤 1998년 방콕 대회에서 처음으로 아마와 프로가 조합을 이룬 드림팀을 구성해 6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병역 혜택 제도가 처음으로 생겨 전원 미필자로 구성된 드림팀은 당시 LA 다저스의 박찬호와 뉴욕 메츠 서재응 등 해외파를 비롯해 국내프로야구의 김동주, 박재홍, 아마야구의 강혁, 홍성흔, 김병현 등이 주축을 이뤘다.

드림팀은 일본과의 결승전에서 선발로 나선 박찬호의 호투로 13-1 콜드게임 승을 거두고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고 전원 병역 면제를 받는 겹경사를 누렸다.

특히 김병현은 중국과의 준결승에서 8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잡는 괴력 투구를 선보여 이듬해 메이저리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은 1명만 제외하고 모두 프로 선수로 드림팀 3기를 구성해 2연패에 성공했다. 이승엽, 이종범, 임창용, 송진우 등이 주축을 이뤄 예선에서 중국을 8-0, 대만을 7-0, 일본을 9-0으로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완벽하게 제압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선 중국에게 6회까지 2-2로 고전하다가 이승엽의 적시타를 시발점으로 7-2로 이기고 결승에 진출했다. 대만과의 결승전은 예선과는 달리 피를 말리는 접전을 벌인 끝에 4-3 한 점차 승리를 거뒀다.

승승장구하던 한국야구는 2006년 도하대회에서 좌절을 맛보게 된다. 김재박 감독이 이끈 대표팀은 결승전 없이 풀리그로 메달 색깔을 가린 대회 대만전에서 2-4로 패한 데 이어, 사회인 야구팀으로 구성된 일본에도 7-10으로 패하며 3위에 그쳤다.

이는 그해 열린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전승으로 4강에 오르며 세계를 놀라게 했던 터에 맛 본 참패라 충격이 컸다.

결국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으로 자존심은 회복했지만, 한국야구는 이번 광저우아시안게임 정상 도전에 재차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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