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통화절하 놓고 갈등 고조

(도쿄=연합뉴스) 김종현 특파원 = 일본이 글로벌 시장에서 수출 경쟁국인 한국과 중국의 외환시장을 강도높게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통화 절하 경쟁을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재무상은 1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외환시장에 수시로 개입함으로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엄하게 추궁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중국도 지난 6월 외환제도 개선을 통해 위안화의 유연화 노선을 택했으나 걸음이 지체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의 재무상이 G20 의장국으로서의 한국의 자격까지 거론하며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고강도 비판을 하고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그는 "G7과 G20에서 거듭 확인할 사항은 신흥 무역 흑자국들이 통화가치의 유연화를 위해 개혁을 행하는 것"이라면서 "세계의 통화가치 안정을 위한 논의에서 일본도 확실하게 주장할 것을 주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과 중국이 시장개입을 반복할 경우 가만히 있지않겠다는 의미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도 이날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국과 중국을 겨냥해 "특정국이 자기 나라의 통화가치만을 인위적으로 낮게 유도하는 것은 주요 20개국(G20)의 협조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도 공통의 룰 속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우회적으로 통화가치 절하를 위한 외환시장 개입 자제를 요구했다.

간 총리가 특정 국가를 지목해 외환시장 개입의 문제점을 지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총리와 외상이 한국과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문제삼은 것은 재계와 야권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과 중국이 외환시장에 수시로 개입해 통화가치를 낮춤으로써 일본이 해외 수출 경쟁에서 큰 손해를 보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본은 내수가 극도로 부진한 상태에서 경제성장의 유일한 동력인 수출이 경쟁력을 잃을 경우 더블딥(이중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일본의 강력한 경쟁자는 한국과 중국이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통화가치 절하를 방치할 경우 일본은 자국 기업들이 위기에 빠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본의 엔화값은 올들어 5월까지만해도 달러당 90엔 안팎에서 움직이다 6월 말 88.5엔, 7월 말 86.5엔, 8월 말 84.6엔, 9월말 83엔대 등으로 가파르게 상승했고 이달 들어서는 13일 현재 81엔대 후반까지 치솟았다.

기업들은 달러당 90엔 수준을 적정환율로 보고 있다. 현재의 환율은 기업들이 견딜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고 아우성이다. 여론은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일본 재무성은 엔화값이 82엔로 상승하자 지난달 15일 2조엔을 풀어 달러를 사들이는 시장개입을 단행했다. 일본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것은 6년6개월만이다.

하지만 시장개입의 약발은 전혀 먹히지않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침체 우려, 미국이 다음달 추가 금융완화에 나설 경우 달러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 등으로 엔화값은 80엔까지 뚫고 상승할 것이라는 예상이 강하다.

시장개입이 아무런 효과를 내지못하자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화살을 돌린 것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의 시장개입에 대한 일본의 비판은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남이하면 스캔들'이라는 식이어서 정당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시장개입은 위안화 가치 절상을 위한 중국 포위망 구축에 나선 미국과 유럽을 맥빠지게 했다. 선진국의 전열에 일본이 구멍을 낸 것이다.

일본은 자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엔화값의 가파른 상승을 감안할때 불가피한 것으로 한국과 중국의 상습적인 시장개입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통화 가치 절하를 통한 수출 증진책이라는 사실 자체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국과 중국의 시장개입을 비판하면서도 자국의 개입 가능성은 열어뒀다. 노다 재무상은 "환율의 과도한 변동이나 시장에서의 무질서한 행동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필요할 경우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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