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수일 주교가 군종교구장좌에 착좌한 후, 군종교구민을 대표하는 이들과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제공)
6.25전쟁 계기로 군종신부단 탄생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한국 천주교회에는 16개의 교구가 있다. 교구는 천주교회를 지역적으로 구분하는 행정 구역을 말한다.

그 중 ‘군종교구’는 다른 교구들과 달리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며 교황청에서 직접 관할한다. 이곳은 우리나라의 군에 복무하는 가톨릭신자 장병에 대한 사목을 위해 설정된 특수 교구다.

전쟁에 파견된 11명의 신부들
군 사목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국군이 군종제도를 창설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6.25 한국전쟁이었다. 천주교와 개신교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에 끝에 1950년 이승만 대통령은 군종제도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국방부에 하달한다.

그리하여 1951년 2월 7일 육군본부 인사국에 군승과가 설치돼 육군 군종제도가 창설됐다. 육군 군종제도가 처음 마련됨과 동시에 11명의 신부가 파견돼 최덕홍 주교를 초대 지도주교(총재주교)로 하는 군종신부단이 형성된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1954년 노기남 대주교가 제2대 군종신부단 총재로 선임됐고 이후 군 사목의 중요성과 군종교구 설립의 필요성 등을 한국 주교들에게 인식시키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매년 1월 첫째 주일을 군목 사업주일로 제정하고 육사성당 건립 안건 등을 통과 시켰으며 1961년 주교회의로부터 정식 인준을 받았다.

이후 군 사목 39년, 군종단 창설 29년 만인 1989년 10월 2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칙서 서명으로 대한민국에 군종교구가 설립됐다.

역대 수장들
1989년 10월 한국 군종교구가 설정된 그해 11월 초대 군종교구장으로 정명조(아우구스티노, 2007년 선종) 주교가 임명됐다. 그는 사제 서품을 받고 20여 년 동안 월남파견과 육군 군종과장, 군종 참모 등을 지냈다.

정 주교는 1989년 10월 한국교회 첫 군종교구장으로 임명돼 군종교구장으로서 9년간 최전선 비무장지대에서부터 제주도까지 가보지 않은 부대가 없을 정도였다. 또한 군종장교로 사목하던 1978년에는 대한민국 보국 포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2대 군종교구장 이기헌 (63, 베드로)주교는 1978년 군종장교로 입대해 1982년까지 군종사목을 맡았다. 이후 잠원동성당, 석관동성당, 일본 도쿄 한인성당 주임을 역임했으며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으로 재임하던 1999년에 제2대 군종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지난달 15일에는 제3대 군종교구장이 탄생했다. 작은형제회 유수일 (65,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주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94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973년 작은형제회에 입회해 1980년 사제품을 받았다. 또한 1990년에는 미국 뉴욕 성 보나벤투라 대학에서 영성신학 석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군종교구, 군인들의 버팀목
군종교구는 2008년 기준으로 2만 8213명의 영세자를 냈다. 전국 교구가 배출한 14만 1454명의 19.9%를 차지하는 수다. 영세자의 다섯 명 중 한명이 군대에서 세계를 받은 셈이다.

이는 교구 중 3만 2124명의 서울대교구 다음으로 두 번째 규모이며 만 20~29살 청년 남성만 보면 전국 영세자 3만 812명 중 88.6%인 2만 7309명을 차지한다.

군종교구는 6.25전쟁 당시 11명의 군종신부단으로 시작됐다. 사제이면서 군인의 신분인 군종신부는 전장에서 포화 속을 누비며 많은 군인들과 함께 했다.

오늘날도 많은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날마다 강도 높은 훈련과 교육을 받고 있다. 군종신부들은 변함없이 그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사람들이며 그 중심에는 군종교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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