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전쟁 역사 재조명

[천지일보=김종철, 이지수 기자] 전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종교’로 인해 일어난 전쟁 역시 수없이 많다. 종교 간 대립으로 인한 전쟁, 자신의 종교를 지키기 위한 전쟁 등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전쟁 속에서 군인으로 변모한 종교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 십자군 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킹덤 오브 헤븐’의 한 장면

◆십자가를 가슴에 새긴 ‘십자군’
11세기 중엽, 이슬람 국가인 셀주크투르크가 비잔틴 제국을 위협했다. 1095년, 로마 교황은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기 위한 전쟁을 선포했고 이로써 ‘십자군 전쟁’이 시작됐다.

십자군이라 부르는 이유는 이들이 방패, 가슴, 어깨 등에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표시했기 때문이다. 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자마자 이슬람교도들을 무참히 학살하고 포로를 학대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이슬람을 뭉치게 한 결과를 초래했고 그 결과 십자군이 성지를 되찾는 일은 실패로 돌아갔다. 예루살렘 원정이 실패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 양치기 소년이 성지를 되찾으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며 소년들을 모은다.

모인 수는 3만여 명으로 불어나게 되고 ‘소년십자군’이라 불리며 예루살렘으로 출항했다. 이때 항로 안내를 해주던 이탈리아 상인들은 소년십자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던 중 이슬람교도들에게 소년들을 노예로 팔아넘긴다. 소년십자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노예로 팔리게 됐고 18여 년이 지나서야 해방될 수 있었다.

◆기드온과 300용사
기드온이 미디안 적군과 전쟁에서 싸울 용사를 선발할 당시에는 3만 2000여 명이 지원했다. 그 중 수적으로 우세한 미디안을 두려워하던 2만 2000명의 병사가 떠나고 1만 명만 남게 된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으로 1만 명의 용사들 중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용사를 뽑기 위한 방법으로 물가로 데려가 그들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머리를 박고 물을 먹은 9700명은 모두 돌려 보내고 적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손으로 물을 떠서 먹은 300명의 병사만 남겼다.

300명 병사만을 이끌고 10만여 명의 미디안 군대와 맞서 싸워 승리한 이 전쟁의 역사가 바로 구약성경 사사기에 기록된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 이야기다. 이들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이들에게 횃불과 항아리를 준비하라 명했고 300명뿐인 소수의 병력은 하나같이 잽싸게 움직였다. 300명의 용사들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횃불을 높이 들면서 큰소리로 “하나님을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고 외쳤다.

미디안 군사들은 잠자다가 갑자기 들리는 큰 소리와 횃불에 놀라 도망갔고 기드온과 300명 용사는 전쟁에서 승리한다.

◆구교와 신교의 대립 ‘30년 전쟁’
‘30년 전쟁’은 1618~1648년까지 독일을 무대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에 벌어진 최후의 종교전쟁이라 불린다.

마틴 루터나 칼빈 등의 종교개혁 확산으로 신‧구교의 대립관계가 형성돼 충돌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독일은 300여 개 국가로 나눠져 있었고 그 안에 작은 국가들 사이에서 구교와 신교 간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여기에 각각의 신교와 구교를 가지고 있던 유럽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독일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됐다. 당시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은 대부분 용병들이었는데 통일된 제복이 제공되지 않았다.

병사들의 옷은 제각각이었고 아군을 구별하기 위해 완장이나 깃털과 같은 특별한 표식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로 아군을 구분할 수 있었다.

많은 용병들은 급료를 제대로 지급받지 못해 무자비하게 마을을 약탈하기도 했다. 1648년 마침내 30년 전쟁은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베스트팔렌조약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 ⓒ천지일보(뉴스천지)

◆호국종교의 모델 대한민국
서양과 마찬가지로 동양에서도 이슬람 국가의 무슬림들과 기독교인들의 종교전쟁은 일어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개신교 선교사들이 이슬람 국가에서 선교활동을 하다 피랍되는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아시아 전 지역에서 종교이념에 따라 전쟁이 발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살펴보면 다른 나라 종교전쟁과는 다른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예로부터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던 나라였기에 종교인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종교의 모습을 보였다.

불교는 신라시대 원광법사의 가르침을 따라 화랑도의 호국정신이 이어져 외세 침략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고려시대에는 몽골과 거란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물리치기 위해 대장경을 만들었고, 대몽항쟁을 펼친 삼별초의 일원으로도 활동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유교로 인해 핍박을 받았지만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승군을 조직해 왜군을 무찔렀고, 전국 각지에서 승군이 나라를 구하기 위해 왜군과 접전을 벌였다.

김성영 백석대(전 성결대 총장) 석좌교수는 “종교는 국가를 위해 종교가 지닌 힘을 발휘해 위기 극복에 앞장설 수 있다”며 불교뿐 아니라 유교, 천도교, 기독교 등 범종교가 항쟁의 중심에서 운동을 펼쳤다고 설명했다.

1919년 3.1운동 때 한국의 독립을 세계만방에 선포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민족대표 33인은 모두 종교인이었다. 독립선언서 서명과 날인에 참여한 민족대표 33인은 천도교 15명, 기독교 16명, 불교 2명으로 구성됐다.

독립선언서의 작성과 인쇄는 천도교 측이 담당했으며 천도교 직영의 인쇄소인 보성사 사장 이종일이 총 실무를 담당했다.

천주교 신자인 안중근 의사에 대해 김봉규(서강대 생명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박사는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은 국제평화의 구체적 틀과 이론을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며 “그는 서구 제국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대한민국의 자주 독립을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 강제 개종교육 철폐를 요구하는 시위 ⓒ천지일보(뉴스천지)

◆신앙의 자유를 무시한 개종교육
국가와 국가 그리고 국가 내에서 종교전쟁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종교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영적 종교전쟁이라 할 정도로 자신의 종교 신념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신약성경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편안의 복음의…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4~17)’고 기록된 것처럼 종말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해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였다.

일본국 헌법 제20조에는 ‘신앙의 자유는 어느 누구든 이것을 보장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통일교인 고토 토로우 씨는 12년 5개월간 납치감금 개종교육을 받았다고 지난 4월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그는 통일교를 이단으로 간주하는 일본 개신교 목사들과 가족들에 의해 인권을 탄압받았다며 한국 내 강제 개종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피해자들과 연대하겠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헌법에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10년간 미국생활을 한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 공동대표는 “한국에 와보니 특정 종교(개신교)를 빼놓고는 이단시하는 경향이 짙다”며 “우리나라 종교계의 현실은 종교 폭력·강제 개종 등의 불법이 자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제개종교육피해자연대(강피연)가 지난 2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광선) 앞에서 강제개종교육 반대 집회 및 서명운동을 열고 한국교회 목회자 및 성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실 알리기에 나서기도 했다.

강피연 소속 관계자는 “불법 강제교육을 이 땅에서 퇴치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며 “평신도에서 목사에 이르기까지, 또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까지 강제 개종교육 실태를 알리겠다”고 다짐했다.

이처럼 국내 종교계 특히 개신교 내에서 신앙의 자유를 무시한 개종교육이 자행돼 문제가 되고 있으며 이에 맞서 종교 신념을 지키기 위한 이들 간의 종교전쟁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