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축구를 좋아하는 지인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우리 어린 낭자들이 너무도 자랑스럽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 어린 태극소녀들의 우승을 축하하면서 세계 축구 정상을 처음으로 밟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공감한다는 내용으로 답신을 곧바로 보냈다. “저도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렇게 여자축구 우승이 주는 전 국민적인 감동대열에 적극 참가했다.

한국여자축구가 17세이하 여자월드컵에서 FIFA 주최대회로는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26일 오전. 필자는 물론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태극소녀들의 당찬 모습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이버 시대에 걸맞게 핸드폰 문자메시지, 페이스북, 트위터, 미니 홈페이지 등 소위 소셜네트워크 시스템이나 서로 간에 직접 축하하는 말 등을 통해 우승의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당신들 때문에 행복했다”고 소리치며 기뻐했다.

긴 추석 연휴의 대미를 장식한 여자축구 우승의 기쁨이 더욱 컸던 것은 축구대회사상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다 결승전 한일전의 극적인 승부차기 승, 8강전 나이지리아와의 6-5 기적같은 대역전드라마 등은 짜릿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간 골프, 핸드볼, 탁구, 배드민턴, 양궁, 레슬링, 복싱,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등에서는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정상을 차지한 적이 많았다. 조그마한 나라이지만 스포츠에서 무서운 저력을 발휘해 세계 무대에서 스포츠 선진국으로 평가받고 기적의 나라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인기있는 구기종목은 세계 정상과는 상당한 거리감을 보여 세계대회 상위진출이 한국 스포츠의 최대 과제로 던져졌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등 이른바 4대 종목의 세계 정상은 넘기 힘든 장애물이었고 부수기 힘든 장벽이었다. 야구가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세계 정상을 힘겹게 밟아보기는 했지만 워낙 경쟁이 치열한 구기종목인지라 세계 강국과 힘겨운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여자축구의 17세이하 월드컵 우승은 그동안 변방에 머물렀던 여자축구는 물론 남자축구가 세계 중심으로 떠오를 수 있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남자축구의 2002 한일월드컵 4강, 2010 남아공월드컵 원정 첫 16강에 이어 20세이하 여자축구의 2010 월드컵 3위 등의 성적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왔지만 아직 전반적인 국내 축구여건은 세계 중심국과 비교해 열악한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특히 여자축구의 현주소는 더욱 형편이 없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초등학교 18개, 중학교 17개, 고등학교 16개, 대학교 6개팀에 등록선수는 1450명에 불과하다. 그 중 고등부에 등록된 선수는 고작 345명 뿐. 거기서 뽑힌 21명이 세계 정상을 일군 것이니 가히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결승에서 맞선 일본과 중국, 미국, 독일 등 강국과 비교하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의 빈약한 여건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대표팀을 구성해 출전한 여자축구는 그동안 명맥만 겨우 유지하다 최근 몇 년 동안 대한축구협회가 직접 전임지도자를 발탁해 각 연령별 대표팀을 체계적으로 지원, 육성해 국제대회에 대비했다. 축구협회의 적극적인 지원책에 힘입어 20세이하 3위에 이어 17세 이하에서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것은 ‘스포츠는 뿌린대로 수확을 거둔다’는 추수의 법칙을 새삼 확인케 해주었다.

여자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앞으로 경쟁력을 갖춰나가기 위해서는 열악한 국내 여건을 개선시키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남자축구와 같은 명문대 여자축구팀 창단 등을 통해 학생선수층을 두텁게 해야 하고 선수들의 취업을 보장하는 실업팀 창단 등을 적극 유도해나가야 한다.

이번 월드컵대회에서 득점왕과 최우수 선수를 석권한 여민지(함안 대산고)와 20세 이하 월드컵대회의 간판 스트라이커 지소연(한양여대)과 같은 유망주들을 계속적으로 잘 관리해 나가면서 전반적인 내부 체질을 견고히 구축한다면 2015년 월드컵에서 성인대표팀이 대망의 첫 우승도 한 번 노려볼 만하다. 태극낭자들이 성인 월드컵에서도 이번과 같은 전국민적인 우승의 환호물결을 일게 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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