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정치의 역동성이 있으려면 장관들이 전면에서 뛰는 게 있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의 산실, 민주연구원 김민석 원장의 말이다. 중앙정부를 이끌어가고 있는 각 부처 장관들의 소극적인 행동을 질타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청와대가 내각보다 국정주도권을 갖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지적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청와대 정부’라는 비아냥거림에도 민주당지도부나 정부쪽에서 그냥 흘려보내는 판에 정치 역동성을 위해 장관이 국정 전면에 나서야 한다며 스타장관의 필요성을 제기한 김 원장의 제언은 타당한 말로 충언으로도 들린다.     

대통령제 하에서 청와대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하면서 국정철학을 내각에 전하는 것은 숙명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한계는 따르는 것이니 청와대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의 보조기관, 참모기구로서 역할에 그칠 뿐이다. 정부는 헌법규정에 의해 정통성을 가진 삼권분립 가운데 행정부의 핵심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각종 정치적·행정적 행위가 내각을 통해 이루어지며 국무회의가 국정 최고의 의사결정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대통령비서실이 정부 정책을 직접 집행하지 못하다보니 내각과 협조해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정책이 잘 운용되도록 해야 함은 당연하다. 그 과정에서 주도권은 당연히 내각이 갖는 게 통상적이지만 문재인 정부에 들어 정부보다는 청와대에 힘이 더 실려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한 지적은 언론과 정치학자들에 의해 이미 지적돼 왔다. 청와대가 내각위에 군림하는 국정운영 형태는 바람직하지 않고 헌법상 정서에도 맞지 않으므로 바꿔져야 한다는 일관된 목소리였다. 

과거 정권이 보여왔던 청와대 주도론, 대통령의 막료기관으로서 참모기능에 그쳐야 할 청와대비서실이 국정을 좌지우지하고 내각위에 군림하는 ‘톱다운(Top-Down)’ 형 국정운영행태는 문제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이 일방적인 지시를 내리는 하향식 구조, 소위 톱다운식 의사결정 구조로 인해 비서실장과 10명의 수석비서관 등은 윗선 지시를 빌미삼아 내각 위에 군림했던 바, 비서실이 부처를 입맛대로 컨트롤하는 과정에서 발생된 사단들이 끝내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우병우 전 사정비서관 등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초래한 게 아니었든가.  

그런 까닭에 정치학자나 언론, 시민단체 등에서는 5.9대선에서 선출된 새 대통령은 그간 비대화를 거듭해온 청와대의 권력과 조직·기능을 가장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하의 청와대에서는 변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된 느낌이다. 국정의 중추가 돼야 할 내각이, 국무위원인 장관들이 소관 정책에 대해 소신을 갖고 적극 추진해 국가 이익과 국민 편익을 가져와야 함에도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로 청와대 눈치를 살펴야 할 상황이 됐다.  

지난 일이지만 정부개헌안 발의 시 내각에서 국민의사를 수렴해 개헌안을 만들고 국무회의 등을 거쳐 진행되는 등 정부가 나서야 했다. 하지만 조국 민정수석이 주관하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등 청와대 주도적으로 진행된 과정에서 정부는 먼산바라기가 됐던 것이다. 6.13지방선거 이후 청와대가 나서서 ‘지방정부, 의회 권력 척결’ 말이 돌아 야당에서는 청와대 직권남용이라며 불만을 터트렸고, 이에 조국 민정수석이 “청와대 특감반이 지방정부·의회 감찰계획 없다”는 서면브리핑을 통해 불을 끈 것도 국정의 청와대 주도론과 상관성이 없지는 않다고 볼 것이다.  

청와대 조직이 곧 정부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헌법 하에서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청와대비서실 등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관한 관리역량을 충실히 지원하고 수행하는 정도로 족하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내각의 징검다리 역할에 충실해야 함이다. 1960년 대통령의 기밀사항에 관한 사무와 의전 역할을 위해 설치된 청와대비서실이 제6공화국 이후 권력기관으로서 비대화된 것으로 이젠 그 오명에서 벗어나 본연의 막료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학자들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행태를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잘못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는 “대통령이 청와대 수보회의와 국무회의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보회의에서 대통령이 국정과 관련된 내각의 업무 추진 상황과 관련 정책적 조언 등을 경청하는 자리여야 함에도 대통령 자신이 이 회의를 통해 국정지시를 하고 정책을 결정하고 있으니 마치 국무회의처럼 비쳐 비서들의 힘이 세지는 판이니 그만큼 장관들의 힘이 빠지다는 것이다.

거듭 밝히지만 청와대 비서실과 정책실은 대통령의 참모기관이지 집행기구가 아니다. 또한 정부의 의사를 결정짓는 의사결정기관도 분명 아닌 것이다.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국정을 주도하면 할수록 정부부처의 기능과 추진력은 반감되고 국정 혼돈마저 야기될 우려도 따른다. 매주 열리는 청와대 수보회의에서 대통령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많은 국민은 국정 최고회의체가 국무회의인지 청와대 수보회의인지 분간키가 어렵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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