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자기 딸을 자기 부서에 사무관으로 특채 합격시킨 외교통상부 장관이 대통령과 여론의 진노(震怒)에 사임했다. 합격자가 딱 한 명이었는데 그게 바로 장관의 딸이었다. 누가 봐도 얼른 수긍하기 어렵고 결코 조용하게 넘어갈 일이 아닐 것이다. 장관도 그만두었지만 그 딸도 못 견디고 그만두었다.

사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관계 당국은 사태의 진상 파악을 진행 중이고 민심은 부글부글 끓는다. 이것이 ‘공정사회’란 말인가.

장관의 그 딸이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딱 한 명 뽑는 특채에 딸을 뽑은 것은 위법성은 몰라도 물의(物議)가 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 장관은 자신의 딸로서 합격자 명단을 확정 짓는 서명을 할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는지 모르겠다.

참모들은 그것이 ‘부적절하다’는 조언을 왜 못했을까. 장관 딸이 ‘의도’한 대로 합격했으니 그저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인 장관 앞에 그 명단을 펴보였을까. 그렇다면 그 조직의 도덕적 해이(解弛)는 매우 위험한 수위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언론이 감시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런 ‘밀실(密室)의 야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국민이 얼마나 깊은 좌절감을 느끼는지 알고나 있는가.

장관이 자기 딸 하나만을 버젓이 뽑는 이런 몰염치한 특채는 과거 반상(班常) 시대의 신분 세습을 위한 음서(蔭敍)제와 다를 것이 없다. 음서는 멀리 신라 시대로부터 고려와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과거(科擧)를 통하지 않는 권문세족 자손들의 또 다른 등용의 길이었지 않은가.

과거시험에 자신이 없을 때 음서의 길을 택(擇)하면 됐다. 이 음서제가 있었기에 권문세족은 자손이 과거에 합격할 능력이 없어도 대대로 권문세족으로 상민 위에 군림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 수 있었다. 이번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채 파동은 자칫 현행의 사무관 특채 제도가 옛날의 신분 세습을 위한 음서처럼 역기능적으로 잘못 운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서류심사와 면접만으로 합격자를 내는 제도이기에 월등하게 조건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배경이 좋은 쪽에 합격의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일자리를 찾아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할 자식을 가진 힘없는 국민들의 걱정과 탄식이 클 수밖에 없다.

민간 기업체에 들어가려 해도 실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에 팽배하지 않은가. 실제로 유력자들의 갖은 청탁과 압력, 부탁이 몰려들어 이를 선별하느라 사원을 뽑는 기업들은 몸살을 앓아야 한다. 한편으로는 기업의 입장에서 유력자의 자제들을 뽑는 것이 기업 환경의 보강일 수 있으므로 아무래도 팔은 그쪽으로 굽기 마련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일자리가 절박한 취약계층은 실력이야 어떻든 여유 있고 배경이 든든한 상위 계층에 의해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공직마저 그렇게 된다면 이 사회에 무슨 희망이 있는 것인가. 서민과 취약계층에 희망이 없다면 ‘공정한 사회’를 외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민관(民官)의 영역에서 힘 있는 계층끼리만 사회적 공리(功利)를 향유하려 한다면 사회는 총체적으로 근친교배(近親交配)에 의한 열성화(劣性化)와 같은 점진적 퇴화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빈부 및 계층의 고착화로 사회 갈등을 키우고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정도의 폐해로 끝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힘 있고 권력 있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자기들끼리만의 야합을 관대하게 용인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 구현을 외치고 있다. 지금이 바로 특단의 비상한 대책을 세우고 시행함으로써 원천적으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때가 아닌가.

만약 사무관 특채라는 제도가 봉건시대의 음서와 같은 역기능이 주로 예견되는 제도라면 폐지하는 게 옳다. 엘리트 공무원을 뽑는 사법 행정 외무고시제를 폐지하려는 계획도 철회해야 한다. 고시제의 단점은 채용 후의 철저한 업무 및 자질, 인성 교육이나 훈련, 연수를 통해 보완하면 될 것이다.

특채 제도가 민간 전문 인력을 뽑아 쓰고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서열화와 폐쇄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하는 장점이 있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것이 엉뚱하게 음서제로 악용될 소지가 발견된 이상 이 제도로 고시제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꼭 필요한 전문 인력은 이렇게 인사제도의 근간(根幹)을 뒤흔들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채용해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은가.

공정한 사회는 신분 계층 빈부 지위의 고하에 관계없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공정한 규칙이 있는 사회다. 이런 사회라야 모든 사람에게 기회가 있고 희망을 준다.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특정 계층이나 승자가 기회와 희망을 독식(獨食)하는 사회는 그것으로 번영은 끝이라는 것이다. 공정한 사회 구현을 부르짖는 대통령의 말이 울림을 갖는 까닭이다. 어렵게 이루어 낸 산업화와 민주화, 번영을 지켜내는 힘, 그것이 바로 공정한 사회의 구현이라는 것을 차제에 모두가 깨달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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