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책은 죽음을 ‘배달’하는 암살자와 그 암살을 ‘창조’하는 설계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가장 강력한 암살 청부집단이라는 풍문을 남긴 ‘개들의 도서관’은 너구리 영감의 구상을 통해 굴러가는 조직이다. 고아 출신인 주인공 ‘래생(來生)’은 너구리 영감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전문킬러가 된다.

너구리 영감에게 래생은 그저 장기판 위의 말 한 마리에 지나지 않는다. 래생은 너구리 영감에게 묘한 부정(夫情)을 느끼면서도 애써 올라오는 감정을 외면한다. 자신을 쓰레기통에 버린 부모에게서 태어났는지, 아니면 쓰레기통이 자신을 낳았는지 래생은 늘 의문을 갖고 산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정죄하면서 다른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해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들을, 희망과 웃음을, 잡다한 감정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도서관의 비호 아래 평범한(?) 킬러 생활을 영위하던 래생에게 급격한 변화가 찾아온다. 자신의 스승이자 아버지나 마찬가지인 ‘아저씨’가 다른 킬러에 의해 죽음을 맞고 난 뒤 급격히 흔들리던 래생은 파트너이자 친구 ‘추’와 ‘정안’이 같은 방식으로 피살되면서 원흉을 제거하기 위해 설계자들의 ‘룰’을 깨뜨린다.

래생은 친구들의 죽음과 관련된 설계자를 찾기 위해 나서고, 그 배후에 기업형 킬러 조직의 수장 ‘한자’와 최강의 킬러 ‘이발사’의 존재를 알아차린다. 그 와중에 래생은 자신의 변기에 폭탄을 설치한 소녀 ‘미토’를 만나게 된다. 모든 설계자들을 파멸시킬 설계를 짜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미토는 그 설계에 래생이 들어 있음을 알리고, 래생은 마지못해 협조하게 된다.

미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래생은 ‘이발사’를 처단하기 위해 그를 찾고 대결을 펼치지만 치명상만 입고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이후 래생은 미토의 계획에 따라 한자가 기록한 암살 장부를 탈취하고 자료를 미끼로 한자를 유인한 뒤 최후의 결전을 치르게 된다.

<설계자들>은 묘한 맛이 난다. 결코 어둡지 않으면서도 희망의 기치를 내거는 것 같지도 않고 우울하면서도 해학이 가득하다. 아마도 저자가 인간 내면의 빛과 어두움을 능숙하게 엮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진진한 전개에 담긴 날카로운 풍자가 몸에 묻어 있던 삶의 부스러기들을 말끔히 털어내 줄 것이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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