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2.6
[천지일보=박완희 기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2.6

노동운동가 출신의 3선 국회의원… 투신으로 막 내려

[천지일보=이민환 기자] 포털사이트 댓글 여론조작 혐의로 수사 중인 ‘드루킹’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투신해 향년 61세로 생을 마감했다.

경찰에 따르면 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9시 39분 서울 중구 한 아파트에서 투신한 것을 아파트 경비원이 발견해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원내대표가 남긴 유서에는 드루킹에게 금전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청탁과 무관하며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노 원내대표는 1956년 부산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첼로를 배워 수준급의 연주실력을 자랑한다고 한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10월 유신에 반대하며 반독재 투쟁에 참석했다. 이때부터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을 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1979년 군 제대 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고, 광주 민주화 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그는 고려대 재학중인 198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현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서 용접공으로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노 원내대표는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죄로 꽤 오랫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도망다니기도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인천, 부천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를 연합해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출범시키며 핵심멤버로 활동했다.

1989년 인민노련이 결성되자 국가안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검거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인민노련 멤버들이 사회주의라고 자칭하며 당시에 파문이 일기도 했다.

노 원내대표는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되며 본격적으로 중앙정치계로 진출했다.

그는 당시 대중에게 무명에 가까운 인사였지만 총선 때 각종 토론회에서 유머러스한 컨셉에 촌철살인의 날카로운 발언으로 단숨에 주목을 끌기도 했다.

2010년엔 서울시장 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해 민주당 한명숙 후보와 단일화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후 당내 갈등이 심화되면서 민주노동당을 탈당하고 진보신당 공동 당대표를 역임했으며, 2010년엔 서울시장선거에 진보신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2013년엔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의 검사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유죄를 선고받고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후 통합진보당 창당에 참여한 뒤 19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때 탈당했다. 정의당으로 당적을 옮긴 그는 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3선에 성공했으며, 정의당 원내대표로도 선출됐다. 지난해 5월 정의당 원내대표직에 재신임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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