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국회의원들이 9일 테헤란의 국회의사당에서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를 비난하며 종이로 만든 미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이란 국회의원들이 9일 테헤란의 국회의사당에서 미국의 이란 핵협정 탈퇴를 비난하며 종이로 만든 미 성조기를 불태우고 있다. 이들은 "미국에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국에 항의하는 즉석 시위를 벌였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이란 핵합의(JCPOA, 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하고 대이란 제재를 2016년 1월 핵합의 이행 전으로 복원한 가운데 제재 유예 기간을 90일과 180일로 두면서 눈길이 쏠리고 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국방수권법의 제재 연장 시한인 5월 12일자로 제재를 되살릴 것으로 예측했으나 유예 기간을 두가지로 뒀기 때문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 기간이 이란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이 매출 채권 회수, 계약 미이행 분쟁 해결 등 사업을 정리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이에 핵합의 직접 당사국이자 서명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이란 간에 외교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는 실낱같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란 정부도 미국이 제재를 재부과하면 즉각 농도 20%를 목표로 우라늄을 농축하겠다는 경고와 달리 미국의 제재 유예 기간과 비슷하게 말미를 뒀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미국이 핵합의에서 탈퇴해도 (우리는) 남겠다”면서 “우리는 두세 달은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그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란 정책 결정자인 아아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도 이날 이란의 즉각적인 핵활동 재개를 지시하는 대신 유럽이 핵합의를 지키겠다는 점을 실질적이고 확실히 보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이 핵합의의 분쟁조정 조항에 따라 서명국이 모이는 공동위원회에 미국의 위반 문제를 회부하면 최장 65일간 이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컨설팅 기업 컨트롤리스크는 9일 낸 보고서에 “미국이 정한 90일, 180일 시한으로 미국을 제외한 핵합의 서명국이 새로운 합의안을 도출하거나 자국 기업을 미국의 제재에서 보호하는 방법을 고안할 수 있는 기간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90일 내 미국과 이란이 합의를 이뤄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새로운 합의를 원하지만 이란은 앞서 합의한 원문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90일 후 대이란 제재를 실제로 부과하면 이란도 핵활동을 재개하면서 이란의 핵위기가 고조될 전망이다. 먼저 양국의 합의가 실패한다면 미국의 제재가 시작하는 8월 6일부터 이란의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가 돌아가게 된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미 8일 밤 대국민 긴급 연설에서 “원자력청에 산업적 수준의 우라늄 농축을 어떠한 제한없이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산업적 수준의 우라늄 농축은 통상 4~5%로, 원자력발전소용 핵연료봉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농도를 높이는 작업이다. 이는 핵합의에서 정한 농축 한도(3.67%)를 웃도는 수준이다.

한편 미국을 제외한 핵합의 당사국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에 반발하며 대응책을 고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복원하면 최근 몇 년 사이 이란과의 교역·투자를 급속히 확대해온 유럽 기업들의 큰 피해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015년 7월 이란 핵합의 타결로 이란에 대한 제재가 해제된 후 유럽 기업들은 앞다퉈 이란 시장에 뛰어들었다. 현재 이란 시장과 진행 중인 거래액만 해도 수십조원에 달한다.

정치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분석가들은 “프랑스와 독일,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 시행 의도를 분석하는 동시에 대항입법이나 미국에 반격을 가하는 다른 방법을 고려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효과를 거두려면 EU의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에 예외를 두는 등 유럽의 숨통을 어느 정도 틔워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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