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시사칼럼니스트

필자의 주된 관심분야는 북핵과 후계구도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그동안 관련 칼럼들을 쓰면서 현재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있는 장성택에 대하여 일부 언급한 바는 있지만 이렇게 제목 자체를 장성택으로 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생각된다.

이는 바꿔서 말하면 그만큼 필자가 장성택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실 그동안 장성택 개인에 대한 정보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아는 정보도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최근에 들어서 그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그동안 미처 알지 못하였던 새로운 정보를 알게 되었다.

장성택은 강원도 천내군 출신으로서 1946년에 출생하였으며,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를 졸업하였는데, 바로 여기서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으니 재학 중에 클래스메이트이며, 김정일 위원장의 누이동생인 현재 경공업부장으로 있는 김경희와 결혼을 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러한 결혼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그 이후 장성택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게 되면 김 위원장의 매제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다니게 되었다.

김경희와 결혼한 이후 그야말로 승승장구하던 장성택도 두 차례 위기가 있었으니, 첫 번째는 1978년 김 위원장의 지시로 강선제강소로 쫓겨난 적이 있었으나 당시 김 위원장의 부인이었던 성혜림의 도움으로 2년 만에 다시 복귀한 것이다.

두 번째 위기는 2004년 당시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와의 갈등 속에서 종파행위를 하였다는 이유로 숙청을 당했지만 결국은 그 이듬해인 2005년 12월에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 부장으로 복귀하였다.

이렇게 두 차례나 위기를 겪었던 장성택이 2007년 10월에 행정부장에 임명되면서 권력의 핵심부로 다시 진입하게 되며, 그 이후 결정적으로 그가 권력의 제2인자가 되는 하나의 계기가 생기니 그것은 바로 처남이 되는 김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2008년 8월 중순이다.

사실 필자는 이 무렵을 전후하여 후계구도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 장성택을 보는 주된 관점은 그가 김정남의 고모부로서 일종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과 북한이 앞으로의 체제가 집단체제로 갈 경우에 대비하여 그의 역할도 일정부분 있을 것으로 예상한 바는 있었으나 현재같이 깊은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김 위원장의 와병기간 동안 장성택은 사실상 권력의 2인자로서 김 위원장의 역할을 대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이듬해인 200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그가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되는 것을 보면서 보다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금년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 김 위원장의 지시에 의하여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선임되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그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권력의 제2인자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이제 후계문제와 관련하여 언급을 한다면 장성택은 재작년 8월 중순 김 위원장의 뇌졸중 악화 이후 등장한 후계구도에서 김정남의 후견인으로 알려졌는데, 뜻밖에도 작년 1월에 김정은이 김 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되었다는 소식과 이러한 결정에 장성택이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점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그동안 김정남을 지지하였던 장성택이 과연 어떤 연유로 김정은을 지지하게 되었는지 그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현재 분명한 것은 그가 김정은의 후견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금년 6월에 국방위 부위원장에 선임된 것을 신호탄으로 9월에 44년 만에 개최될 예정인 당대표자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지켜볼 것이며, 이와 더불어 김 위원장의 후계자라고 내정되었다고 하면서 유학시절의 사진만 공개하였지, 한 번도 현재의 모습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김 대장이라고 알려진 김정은이 최초로 공식석상에 등장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장성택이 건강이 정상적으로 회복되지 않은 김 위원장의 사실상 대리인으로서 북핵문제를 비롯하여 경제회복 및 천안함 사건이후 냉각되어 있는 남북관계와 미국의 금융제재에 어떤 입장을 보일지 그의 행보를 주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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