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연합뉴스) 베트남 하노이에서 23일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예상대로 '천안함'을 둘러싼 격전의 장이었다.

남과 북이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놓고 첨예한 대립의 날을 세운 가운데 양측의 우군격인 미국과 중국이 가세한 '슈퍼 외교전'이 펼쳐진 무대였다.

외견상으로는 직접적인 설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의견개진' 형식이었지만 천안함과 북핵 이슈를 둘러싼 한치의 양보도 없는 긴장과 대립이 회의 내내 지속됐다는 후문이다. 공교롭게도 남.북한 대표는 회의장 테이블을 정면으로 마주보는 위치에 앉았다.

우선 한국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ARF 외교장관회의 '리트리트(자유토론)'에서 5번째 발언자로 나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의 사과'를 요구하며 압박했다.

유 장관은 "천안함 도발행위를 명확하고 진실하게 시인하고 사과하라"며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포괄적이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그러려면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실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미국이 엄호사격에 나섰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호전적인' 북한의 행태를 지적한 뒤 이웃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위협과 공격 중단을 촉구했고, 오카다 가쓰야 일본외상은 "북한의 천안함 공격이 역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면서 북한의 도발 자제를 요구했다.

일본도 힘을 보탰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은 "북한의 천안함 공격이 역내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며 "북한은 국제사회의 촉구에 부응해 다른 나라에 대한 도발을 자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자 박의춘 북한 외무상이 정면 반박에 나섰다. 남측의 사과요구가 "적반하장"이라며 오히려 한.미가 자신들의 공동조사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공세의 날을 세운 것이다.

그는 "위도한 영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 강행군을 하고 작년에 기적적인 경제성장을 했는데, 이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정세가 도래했다"고 주장하고 "천안함 사건은 아직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강변했다.

박 외무상은 또 '평등한 6자회담'과 '평화협정 논의'를 꺼내며 국면전환을 꾀했다. 그는 "제재의 모자를 쓰지 않은 6자회담을 통해 조선반도의 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선(先) 제재 철회.후(後) 6자회담' 입장을 재차 확인하고 정전체제를 '냉전시대의 유물'로 규정하면서 조속한 평화체제 구축을 요구했다.

이에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도 거들고 나섰다. 양 부장은 "천안함 문제는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이 발표된 만큼 이제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며 국면전환을 주장하고 "6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해야 한다"고 밝혔다. 러시아측도 "6자회담의 재개를 기대한다"고는
입장을 표명했다.

양측의 외교전은 장외(場外)로까지 이어졌다. 북한 대표단의 대변인 격인 리동일 과장은 회의장 밖에서 기자들과 도어스텝(약식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미국의 군사조치에 대해 물리적 대응이 있을 것"이라며 "많은 공격무기를 장착한 조지워싱턴호가 참가한 이상 한미연합훈련은 더 이상 방어훈련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 고위당국자는 회의도중 기자실에 들러 "북한이 도발행위에 대해 사과하고 비핵화 의지를 먼저 보여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다만 외교소식통들은 과거 태도와 비교해볼 때 북한측이 일정하게 '로키 대응'을 꾀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소식통은 "평양방송이나 조선중앙통신보다도 부드러운 어조로, 천천히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했다"며 "과거보다는 톤이 낮아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번 ARF에서 참가국 대다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성명 기조에 따라 천안함 사건과 희생 장병에 대해 위로와 유감을 표하고 나섬에 따라 북한이 자국의 주장을 강변할 분위기는 아니였다는 게 당국자들의 분석이다.

중국도 남중국해와 관련한 영토분쟁이 핵심 의제로 부각되면서 북한을 옹호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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